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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동물이란 어떤존재일까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계기

10년 전의 일이다.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 수직으로 땅을 파고 내려가다 보면 세계에서 세로로 가장 긴 나라, 칠레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나는 1년간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행 티켓을 예매했던 어느 날 저녁. 머물던 숙소로 돌아가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건너편 회사 빌딩 로비에 홀로 앉아있던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였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며칠이 지나도 그 개는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 당시 칠레는 여름이었고 작은 장마가 시작되고 있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촉은 내 발걸음을 빗속을 지나 덩치 큰 그에게로 향하게 했다. 팩트인지 추측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심장 사이를 요동쳤고 확신 아닌 확신을 갖게 하였다.


"주인에게 버려졌구나...?"


한국의 진돗개처럼 주인과 사람에게 충성스럽고 똑똑해서 사람들이 반려견으로 많이 입양하는 골든 리트리버. 그러나 적어도 그 아이 곁에는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내 손에는 이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티켓이 있었기에.


자식처럼 손주처럼 강아지를 기르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온 나로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고 그저 작은 위로를 던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작은 다짐을 하게 된다.


"나중에 커서, 성공하면, 내가 너희들 손을 꼭 잡아줄게."


한국에 무사히 안착했고 이후 먹고사니즘에 뛰어들었다. 철딱서니 없이 돈을 흥청망청 쓰기도 하고, 돈을 모으기도, 동시에 지금의 삶이 뭔가 나랑 맞지 않고 1인 기업을 시작하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 작금의 요즘. 생활도 무료하고 돈 때문에 지치고 생기가 떨어진 내 머릿속에 다시 끔 떠오른 것은 바로 유기 동물이었다.


현실적으로 입양할 형편이 못된다. 그러나 지나가는 고양이, 강아지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부모님이 군인이었던 사람들이 군인이 되고 재벌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돈을 계속 많이 버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서 나 또한 동물에 대한 관심은 어쩔 도리가 없다.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유기 동물 보호소 봉사활동을 신청했고,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보호소 봉사활동 업무들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수십 마리가 생활하기 때문에 털, 오물, 기타 다양한 쓰레기들이 발생하고 봉사자들은 그것들을 청소하고 분리수거한다. 세균과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소독약을 뿌리기도 하고 동시에 깔끔히 청소해야 한다.

평균 8~10여 명의 봉사자들과 같이 진행하는 시설 청소는 사실 30분에서 1시간이면 다 끝난다.


그곳을 관리하는 소장님은 항상 부탁하시는 것이 있다.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은 청소도 청소지만, 아이들과 스킨십 많이 하고 많이 놀아주세요."


그래서 남은 1, 2시간은 사실 동물들과 노는 시간이다. 자유롭게 셀카를 함께 찍기도, 품 안에 안아 잠을 재우기도 하고 지저분한 털이나 발톱을 정리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매주 나는 작업에 대한 보람과 땀,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세상의 전부였던 주인에게 무심하게, 혹은 무참히 버려졌다. 일부는 구타를 당하고 보신탕이 되기 위한 끔찍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동물 보호연대로부터 구조된 친구들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봉사자들 앞에서는 그렇게 세상 발랄할 수가 없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즐겨 하는 MZ 세대들은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반기며 품 안으로 파고드는 동물들을 '똥꼬발랄 하다' 라는 새로운 SNS 키워드까지 탄생시켰다.


혹자는 세상 동물들 중 유일하게 개들이 사람처럼 영혼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의 연봉이 낮아도,

사업이 망했더라도,

크고 작은 병을 앓더라도,

남친과 헤어져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영혼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하고 사랑을 준다. 그래서 적지 않은 봉사자들이 '유기견을 도와주러 갔다가 오히려 내가 사랑받고 위로받고 온다' 라는 후기를 꽤 많이 남기는 편이다.


어떤 내 친구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디스 한 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회에서 비교적 인정을 많이 못 받다 보니 유일한 탈출구인 동물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내가 '그럼 니 친구인 나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반박에는 '그건 너 스스로 잘 알잖아 ㅋㅋ'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 썰을 풀지는 않았다. 정곡은 나 혼자 찔려도 되니까. 그들은 대부분 반박하거나 혹자는 발끈할지도 모른다.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적어도 나는 다시 그 친구와 그 대화를 하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하찮아 보이는 동물일지라도 그들 또한 우리처럼 심장을 가진 또 하나의 생명체다.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반려동물로 길러왔고 돼지나 소와 달리 식용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우리나라와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편. 이미 미국과 스웨덴 등의 선진국은 일찌감치 [반려동물 =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고 그에 대한 사회 제도와 법률이 많이 발달해 있다. (동시에 학대 등이 발생할 시 그에 대한 처벌이 꽤 엄한 편)


사회성, 사회생활이 남들에 비해 조금 뒤처지다 보니 유일한 위로의 수단으로 동물을 입양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사실 분명히 많다. 유일하게 자신이 최고로 인정받는 순간이 강아지와 함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성처럼 동물을 함부로 대하거나 잔인하게 학대, 또는 매정하게 산골짜기에 유기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봉사활동, 혹은 유기 동물 입양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동시에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사회운동과 법률 개정 요청. 강제성은 없지만 도덕성과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연예인 이효리 같은 분들이 매년 수많은 유기 동물들을 입양해서 기르는 것처럼.


이제 반려동물 사업 시장 규모는 15조 원을 돌파했다. 현 정부는 앞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에 대해 '반려동물 보유세'라는 새로운 세금까지 부과한다고 한다. 그만큼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재를 매우 관심 있게 검토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과거처럼 가볍게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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