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헤어지면 돼"
우리 나중에는 어떻게 될진 몰라도 정해지지 않아서 그게 나는 좋아요
남들이 뭐라는 게 뭐가 중요해요
서로가 없음 죽겠는데 뭐를 고민해요
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내가 너 없는 게 익숙해지면
그때가 오면 그때가 되면 그때 헤어지면 돼
수많은 연애와 이별로 지칠대로 지쳐 남자고 연애고 아무런 흥미가 없었던 39살의 나.
이미 30대 중반 이후로는 너무 지친 마음에 연애고 결혼이고 반 포기 상태였다.
고양이들을 거느린 채 평화롭게 늙어가자고 다짐한지도 오래였다.
2023년 10월부터 5개월간 이어간 지난 연애도 역시나 그렇고 그런 남자,
무관심의 끝판왕 구남친과의 연애,
나에 대한 구남친의 배려 없는 마음에 복수하려는 오기같은 마음을 반 담아
2024년 1월 취미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구남친과의 이별은 금방 찾아왔고 2024년 3월 구색맞추기식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때부터 나의 동호회활동은 날개돋친 듯 열성적일 수 있었다.
너무 지긋해서 다신 연애같은거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같은 해 8월, 동호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의 뒤풀이 자리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오며가며 봤을때도 내 눈에 한눈에 들어온 잘 생긴 남자였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우리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단 사실을 알게됐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이후 택시를 함께 탄 우리는
또 다른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정신없이 대화를 이어갔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난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자면서도 심장이 날뛰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자꾸 잠에서 깼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떨림이었는데 그게 아침부터 밤까지 은근하게 이어진다는게 희한했다.
부정맥인가 의심했다.
잠에서 깨고 나면 그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다시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꿈같았다.
이 사람은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과 확실히 달랐다.
밀당 없이, 내가 보낸 카톡에 즉시 오는 정성스러운 답장을 보면서 내 설레는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 다 기억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 다정한 태도에 내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 뒤 우리 둘만의 술 약속이 잡혔다.
2차로 단둘이 가맥집에서 맥주를 기울였다.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 줄을 서고 있는데
그동안 내 옆 테이블의 나와 같은 라인에 앉아있던 여대생이 내앞에서 줄을 서서 같이 기다리다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네??"
"언니, 언니 앞에 앉은 남자가 언니 엄청 좋아하던데요?? 눈빛이 장난 아니던데, 제가 다 봤어요"
이렇게 로맨틱한 장면 속에 내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술에 취한 나는 그순간 미래에 대한 행복으로 마음껏 무너졌고 마음껏 취했다.
이제 모든것이 되었구나.
이렇게 내 이상형인 남자가 나를 좋아한 적이 있던가,
신이 난 상태로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마셔댔다.
늦은시간까지 이어진 3차. 앞뒤 맥락은 현재로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3차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남자의 입에서 폭탄같은 말이
무방비 상태의 내 앞으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했고, 지금은 이혼한지 2년 됐단 얘기,
이혼 후 힘들었던 얘기, 지금은 주중 퇴근 후 애를 돌보고 있다는 얘기,
애 엄마가 주말마다 애를 데려가서 보니까 주말마다 동호회 활동을 하러 나올 수가 있다,
이런 얘기가 얼얼하게 들려왔다.
뱃속이 시렸던 건 맥주가 차가워서였을까.
3주간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파서였을까.
근데 왜 그렇게 울었나 모른다.
어이 없게도 '이혼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남자가 불쌍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어느정도 정신차리고는,
좋아하는 내 마음이 설레던 그 마음이 너무 좋았었는데, 그 좋은 마음을 거둬들여야만 한다는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면 어떡해요.
난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내가 좋아하게 만들지 말았어야죠."
하면서 그사람을 엄청 혼내켰다. 너무너무 속이 상해서.
다 끝났구나,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주일을 지옥같이 보냈다.
그남자는 꾸준히 나를 설득했다.
"**씨 마음 이해해요. 우리 딸이 나같은 사람 만난대도 엄청 속상할텐데.
**씨 부모님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죠.
**씨가 우리 애 보게 하는 일은 절대 없게 할게요. 내가 그만큼 잘하면 돼요. 할 수 있어요."
몇 주간 로이킴의 노래를 종일 들었던 것 같다.
그래, 나중에, 나중에 그때 가서 헤어지면 되지.
이 손을 지금 내가 먼저 놓고 다시 맥아리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얼마만의 마음인데, 부정맥같은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일단 가볼까..가봐도 되나....
이 끝은 얼마나 힘들까? 이 사람과 헤어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마음으로는 철통같이 내 방어 하면서 연애하게 될텐데 그래도 될까. 얼마나 가려나.
하지만, 결국 그냥 미친 불나방이 돼보기로 했다.
아니, 내가 결정한적도 없다.
이미 섶을 진 채 불속으로 뛰어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