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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오빠의 생일기념파티

자꾸자꾸 쌓여가는 우리의 추억들

by 한눈팔기

오빠 생일을 잘 지내고 난 지 1주일이 넘었다.

오빠의 생일을 축하하던 기간,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몇년전, 맛있기로 유명한 케이크 전문점을 알게 되었을때

나중에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집 케이크를 주문해서

그사람의 생일은 이 케이크로 꼭 축하해주고 싶었었는데,

그 소원도 이번에 이룰 수 있었다.


맛있는 생과일 케이크 조각을 사가지고

오빠와 촛불을 함께 불고,

서울 시내 야경을 내려다보며 와인을 마시면서

생일을 축하했다.

3시간이 넘도록 우린 많은 얘기를 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차례 들은 바 있는,

오빠가 이혼했을때의 힘들었던 상황들에 대한 얘기였다.



"오빤 어떻게 혼자서 딸을 키울 결심을 했어?"

"전처가 양육비만 주면 재희 본인이 키운대.

'양육비만 주면' 이라는 말을 엄마라는 사람이 한다는게 말이나 돼?

그게 화나기도 했고, 난 엄마 도움도 받을 수 있었고 상황도 여건도 내가 더 나은거 같아서

엄마도 재희 우리가 키우자고 했었던거야.."

이혼 당시 7살쯤 됐던 재희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게 보여서

오빠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재희를 1년간 돌보았다고 했다.

이혼도,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도 다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 약을 먹을뻔했었다는 오빠.


"근데 내가 그렇게 힘들었어도 딴 생각안하고 버티면서 재희 잘 키워서..

그래서 하늘에서 나한테 복을 내려준것 같아.

서희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게 나한테는 너무 큰 복이야."


이렇게 말하는 오빠의 반짝반짝 빛나던 눈을 잊을 수 없다.

날 또한번 두근거리게 만드는 진심이 가득 담긴 눈빛.

잊지 않기 위해 꼭 여기에 기록하고 싶었다.

나를 만난걸 매일매일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오빠의 예쁜 마음,

두고두고 잊지 않을거야.



그렇게 와인을 들이붓다시피 마신 뒤 술이 만취가 되었고, 우리는 심야버스를 타고 쭈욱 집으로 오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하늘이 온통 흔들리는 느낌에 더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넌 이제 큰일 났다" 하는 시그널이 울렸다.

당장 졸고 있는 오빠를 깨웠다. "나 지금 내려야 돼"

그리고는, 두번 다신 갈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동네에서

그날 먹은 것을 다 확인하고야 말았다.....

거의 정신을 내동댕이친 채

어느 벤치에 널부러져 있을때 오빠가

"서희야, 너 핸드폰 어딨어?"

하고 묻는다.

"내 가방, 내 가방에서 찾아봐"

"없어. 전화해도 안울리는데?"

나는 속이 너무 안좋아서 핸드폰이 있건 없건 찾고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오빠는 "아 진짜 큰일났네" 하면서 계속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댔다.

집념으로 가득한 진동소리에 누군가 호응하여, 오빠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버스 안의 누군가 받아주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7번만에 받아준 그분,

하필 외국인이었단다...

오빤 버스기사분에게 전화를 넘겨달라고 부탁했고

운전 중인 버스기사님과 오빠의 긴 통화 끝에 버스기사님은 내린 그 곳으로 갈때까지 기다리라 하셨고,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2시간이 걸린다고 얘기해주셨단다....

이미 때는 3시 반...

우리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고

나는 곯아떨어져버렸다.

오빠는 버스가 언제올지, 기사님에게 전화가 언제 올지 몰라 잠을 못자고 있었단다..

버스가 다시 돌아온건 5시 반..

핸드폰을 받아들고 오빠와 나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아침에 잠에서 깬 나는 창피함에 그만 똑 죽고만 싶었다.

오빠랑 그동안 술을 아무리 먹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하루에 도대체 몇가지 사건을 벌인건지 모르겠다.

힘들다는 내색 없이 짜증한번 내지 않고,

내 핸드폰을 끝내 찾아와준 오빠.

고맙고 또 고마웠다.

푹 자고 일어나 나를 보러 오고 있다는

오빠의 전화를 받으며

고맙다고 수십번을 반복해서 얘기했다.

이것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쓰는

부끄러웠던 그날의 기록 ㅜㅜ



오빠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누님을 만났다.

"기주가 서희씨 만나고 얼굴이 완전히 폈어.

옛날에는 완전 인상파였는데..

얼굴도 가뜩이나 시꺼매서 기주가 들어오면 분위기 완전 다크해졌다니까?

요즘은 맨날 이렇게 웃고다니잖아.

서희씨가 사람 하나 살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빠를 만나기 전 나는.

야근에 주말근무에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숨통을 조여오는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래서 낙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고 확신했었다.

매사에 아무런 감정도 동요도 생기지 않아서

마네킹같은 인간으로 퇴화되어 가는 중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도 이렇게나 많이 변했다.

오빠의 한마디 한마디에 웃느라

평생 웃었던 모든 웃음의

몇배를 곱한 웃음을 1년간 웃고 있다.



서희는 오빠에게 복덩어리랬지,

오빠

나한테 오빠도 그래.

생각만해도 힘이나.

힘든일이나 화나는 일 있어도 괜찮다고 달래주는 오빠와 얘기하다보면

금세 다 없던 일이 돼버려.

자꾸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재희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되지 못하는게 아쉽고 답답해.

엄마도 아빠도 다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빠같은 사람은, 내 평생에 다시 오지 못할 사람이어서

오빠 없이 살게 된다면

아무도 내 마음안에 들일수가 없는 채로

늙어가야만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거같아.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미국에 가있을 1년 동안

오빠가 변하거나 내 마음이 작아질까봐 두려웠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도 거의 사라진 것 같아.

그냥 이제는 정말 단단해져버린 것 같거든.

내 마음도.

오빠에 대한 믿음도.

곧 있으면 우리가 만난지 1년이 되어 가는데

그간 내 사랑이 점점 커지도록 만들어 줘서,

작아질뻔했던 마음도 다시 붙들고 돌아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복덩이 두명이서 앞으로 더 알콩달콩

재밌게 지내자 !

사랑해 어제보다 오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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