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건 지금이니까.
20대 후반, 30대 중반까지 나는 속물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속물이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갖게 된 직업에 대한 자신감은 어린 마음에 세상에 내가 제일 잘난줄 알게 만들었었다.
전혀 대단하지도 않은건데, 어린시절 나는
눈에 보이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게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더더욱이나 기고만장했었다.
그래서 소개팅이 들어오면 남자 직업부터 따졌고, 그 다음에 학벌을 따졌고, 외모를 따졌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성에 차지 않는 소개팅이 들어오자 결혼정보회사까지도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소개받고 만났지만, 내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은 진짜 단 한명도!! 없었다.
소개팅으로는 많은 연애를 해보았지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는 인연이 되어 잠깐이라도 연애를 한 적 조차 없다.
정말, 정말 내 돈내고 안좋은 경험만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 나는 결혼정보회사 가입 반대 전도사가 되었다.
거기에서 인연을 만난다는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더 여러운 일이라는걸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랬던 내가.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속물 탈출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둘 때가 되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내 옆자리에서 근무했던 남자 후배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3살 많았는데,
자상하고 친절하고 가정적이고, 보기 드문 남자였다.
출근을 하면 사무실 안은 그 후배가 직접 원두를 갈아 끓여 내려놓은 커피향으로 가득했던 하루하루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와이프도 해외 여행 중에 만났다고 했다.
와이프와 마련한 조그만 예쁜 주택에 직접 발품팔아가며 인테리어 한 집이 너무 예쁘다고 자랑하며
사무실 식구들을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었다.
와이프에 대한 사랑은 어찌나 끔찍했는지, 맛있는걸 먹을때면 와이프 생각난다 하고
맛집 정보도 많이 알앗는데, 와이프와 맛집을 많이 다녀서 알게된거라 했고
회사 워크샵이라도 가게 되면, 모든 계획을 알아서 척척 짜며 맛집과 예쁜 카페를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워크샵 중 또한번 놀랐던건 그 분의 요리실력, 설거지 솜씨, 과일 예쁘게 깎아 내놓는 모습.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던게 잊히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난 뒤였었던가...
그 남자 후배는 와이프와 함께 해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며
2017년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거하게 한턱을 냈었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몰랐다.
해외 유학을 떠난지 채 3개월이 안되었을 때였을거다.
자다가 친한 여자 후배에게 받은 카톡메시지,
"선배님, ** 선배님이 돌아가셨대요."
기겁을 하며 잠에서 깼다.
유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런 이유없이, 심장마비로,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유학생활을 제대로 시작조차 못해본채로..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후배의 사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 없었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같이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그리고 돌아오는 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길이 생생하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고
저 반대편 커다랗게 서 있는 병원을 보며 했었던 생각...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왜 나는 그동안, 그토록 남의 기준에 맞춰 살고자 애썼을까.
왜 내가 갖고싶고 하고싶은걸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눈치만 보며 살고 있었을까.
한번뿐인 내 인생인데, 망설이고 기회를 놓치고 후회를 하면 뭘 하나.
이제부터 반드시,
내가 "지금" 행복한 최고의 방법을 찾아 살아야지.
단 하루라도 "지금" 내가 행복한 방법을 찾아 그걸 마음껏 누려야지.
죽는 그 순간에 이정도면 만족하다고 여길 수 있도록..
내가 이 얘길 하고자 하는 이유는
1년 전,
오빠가 돌싱이고 아이까지 있다는 걸 알았을때
오빠와의 만남을 이어갈지 엄청난 번뇌에 휩싸였을때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그 때 나는,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지 않기로 했었던 내 다짐을 생각했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을 단 하루를
그 무엇 때문에, 더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지.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에 지금 당장 느낄수 있을 행복을 너무 일찍 단념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던 그 날의 내 마음을 떠올렸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미래가 답답하고 막막할때
처음 내 마음을 다시 불러온다.
물론 언젠가 정말 힘들고 속상한 날이 올 수 있겠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수 없을지도 모르겠지.
그치만 지금 나는 오빠 덕분에 몹시 행복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오빠가 얼토당토 않을 수는 있겠지.
그치만 지금 오빠는 내가 원하는 모든걸 다 해주고 있으니까.
나는 누구보다 연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걸 오빠를 통해 알았다.
오빠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재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불편하거나, 화가 나거나,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상관없이
늘 같은 시간,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를 하지 못할때에는 미리 어떠한 일때문에 이따가 전화를 못하게 될거라는걸 얘기 해준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얼마나 고마운건지, 나는 매일 느낀다.
당연하게 받는 전화 속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오빠의 마음을 느낄때면 솔직히 종종 울컥하곤 한다.
지난 주말에도 그 점이 오빠에게 너무 고맙다고 오빠에게 말하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랑이 모자라 남자친구를 못마땅해하던 지난날의 연애와 비교하면,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며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까 어떤 말에서 내가 실수를 했을까
전전긍긍했던 연애들을 떠올리면,
반복되었던 패턴들을 다 잊게 만들어주는 오빠가 있어서 지금 나는.
안정적이고 행복하고 편안하다.
지금의 나는 사랑이 넘쳐나 그게 다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을 산다.
지금만 산다.
미래의 걱정이나 불안은 그때 가서 하련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이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지금 행복하니 되었다.
오빠를 만나며
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거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