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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Oct 08. 2024

마무리,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올해 더위만큼, 길고 길었던 이 년이 지나갔다. 재작년 10월 1일부터 시작했던 고난의 행군이 올해 10월 2일 부로 끝이 났다. 하루 걸러 24시간 근무를 하면서, 매일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법령에  전기기사 취득 후 2년의 실무경력이 있어야만, 모든 전기설비의 전기안전관리자로 선임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명 '무제한 선임'이라 불리는 자격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깜깜이 무경력자인 내가 운 좋게 전기기사 자격은 취득하였어도, 이제까지 자격증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아갈 수 없었다. 드디어 실무경력이 충족되었으니, 다음 일자리부터는 일근직과 같은 근무형태에 보수도 향상된 일자리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더 기뻐한 사람은 아내다. 우선 출근 날 도시락 챙기기 전쟁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단연코 밥심이었다.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든든하게 먹이는 것은 물론, 세끼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혹시 반찬이 부실해서 입맛을 잃을까 봐, 늘 여섯 가지 이상의 입맛 돋우는 반찬을 챙기느라 고심했다. 또 하나는 나에 대한 심기경호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무하고 돌아온 날 아침, 부족한 잠을 보충시키기 위해 쥐 죽은 듯 생활해야 했다. 거기다 나의 컨디션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기분을 살피느라 늘 노심초사했다. 이것 모두를 자신도 일을 하러 다니면서 허투루 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비로소 부담감에서 헤어날 수 있게 되었다.   


군 복무 중, 예정된 전역일자 보다 10개월 빠르게 군복을 벗었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에, 그냥 목적의식 없이 출퇴근만 반복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었다. 2016년 군복을 벗은 후, 정확히 6년 만에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6년 중, 군무원 신분으로 근무했던 잠수함수리창장 3년과 어머니 간병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부하는 기간이었다. 공부는 잠수함수리창장을 가기 전에는 비상계획관, 그 후 전기기능사와 소방안전관리자, 전기기사 공부였다. 사관학교 전공이 전기공학이어서 전기기사 시험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지만, 거의 무경력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러곳에서 확인한 조언을 참고로, 이력서에는 전기기사를 제외하고 전기기능사와 소방안전관리자 1급 자격만 명시했다. 그렇게 조언한 이유는, 전기기사를 내세우면 근무 초기부터 실무경력 만 채우면 곧 갈 사람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막상 근무해보니 그 조언은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근무교대를 하면서 업무도 숙달시켜준 과장 직책을 가진 사람이 전기산업기사를 따고 2년째 근무 중이었다. 산업기사는 4년의 실무경력이 채워져야 자격이 유효화된다. 내가 전기기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도와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근무를 시작할 때의 감회가 새롭다. 일본식으로 부르는 공구의 이름을 몰라서 다른 공구를 가져다 준 적도 많았고, 사다리도 접을 줄 몰라서 접지 않은 채로 들고가다 지적 받기도 했다. 세대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윗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빌딩의 전반적인 설비시스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근무할 때면 항상 문제 발생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새벽녘에 화재경보가 울려 대피하는 입주민들 사이를 헤치고 허둥대면서 조치했던 적도 많았다. 분위기 파악이 안되서, 미숙해서,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윗사람이 근무 초기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모르는 게 많아서 걱정이라는 내 말에, "일년은 지나봐야 됩니다." 했다. 정확했다. 계절 별로 다른 성격의 일들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나니, 나머지 일 년은 수월하게 지나갔다.


9월 초, 윗사람에게 월말까지 근무하고 그만둘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했었다. 물론 실무경력 기간이 채워졌다는 말은 못하고 가정문제를 내세웠다. 그때 윗사람의 아쉬워하는 표정과 근무지 다른 사람들도 같이 근무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내가 신뢰는 받고 있었고 꿋꿋하게 견뎌낸 기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하루걸러 24시간 근무의 강행군이 버거워서 근무형태가 조금 더 느슨한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력서에 짧은 근무 후 이직이 잦은 경력 보다는 한 곳에서 길게 근무한 경력이 낫다는 것과 힘든 과정을 버텨내는 내성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이제 맞이하게 될 인생 2막의 과정은 조금 더 여유있게 시작을 할 것이다. 홀로 있는 아버지도 보살피고 내공을 튼실하게 할 교육도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보란 듯 이력서에 전기기사를 적어넣고 자격에 걸맞는 구직활동을 할 것이다. 구직활동의 방향은 경제적 이점을 빙자해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주는 곳 보다는 즐겁게 일하고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곳을 택하려고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서 현장을 확인해 볼 예정이다. 이제 새로운 곳에 취직이 되고나면, 미뤄둔 취미활동도 시작해 보련다. 더 여유가 생기면 궁극적 목표인 사회적 기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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