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이 지나갔다. 작년 12월 18일부터 근무를 시작했으니, 이곳에서의 여정도 어느덧 반년을 지나쳤다.
전기기사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이 년의 경력을 쌓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 년을 꼬박 격일제 근무로 채웠다. 의무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을 여유는 없었다. 그 결과로 전기기사 자격증에 걸맞은 자리로 이직할 수 있었지만, 전문성은 별반 갖추지 못한 여전한 초보였다.
이전 직장에서 퇴직하고, 꼬박 두 달 반을 쉬었다. 아내의 잔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쉬는 게 무료해질 무렵, 새 직장을 찾아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근무하기로 결정한 데가 이곳이다. 근무를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서 가깝고,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렸다. 건축한 지 삼십 년도 지난 대형 건물이고, 같이 근무해야 할 사람들의 첫인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전기과장 직책의 순조로운 시작을 안내해 줄 전임자가 없었다. 윗사람과의 불화로 3 주 전에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워낙 전문성이 없어서 제대로 인계를 받아도 염려되는 상황인데,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더구나 곧바로 주관해서 처리해야 할 전기요금 계산은 최악이었다. 엑셀시트의 칸마다 들어있는 계산식은 눈 빠지게 쳐다보아도 이해되지 않았다. 집까지 자료를 가져와서 저녁시간은 물론 주말까지도 반납했다. 그야말로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결국 ‘잠시 쉬어갑니다’라는 글을 올려놓고는, 부득불 잠복기에 들어갔었다. 언감생심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근무를 시작할 때 엄습했던 긴장감은, 마치 산수에 익숙해 있다 중학생이 되어 수학을 접하고 느꼈던 섬뜩한 불안감.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3일 만에, 어리바리 실수도 적당히 이해받던 시절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오로지 치열하게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이 들어왔을 때, 나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던 비수 같은 눈길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두 달이 고비였다. '더 앞으로 나가느냐, 사서 고생할 필요 있냐면서 이쯤에서 멈추느냐.' 하는 결정을 해야 할 시기 말이다. 어쨌든 나의 미련스러운 우직함 덕분에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이제 단순히 버티는 수준을 벗어나, 뭔가 결과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행히(?) 오래된 건물이라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의구심 가득 찬 눈길로 거리를 두었던 사무실 사람들도 스스럼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일 년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덕분에 얻어진 숨돌일 여유는, 곧바로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그간 글을 쓰지 못한 것은 물론 보석 같은 작가들의 글을 읽을 여유도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이 평상으로 돌아온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이제 어쩔 수없이 거리를 두었던 친구들과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추억을 안주삼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주제넘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누가 나에게 인생 2막에서 안정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비결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첫째는 과거를 잊고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름길을 찾지 말고 우직하게 부딪치면 된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도 버텨나가기 위한 모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