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늘 스쳐지나가버리고, 미래는 가늠할 수 없어 가까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있어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들어 갈수록 "내가 왕년에~~~"를 많이 찾는다. 차곡차곡 쟁여진 과거의 기억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내와 보라매 공원에 자주 간다. 아마 사흘에 두 번꼴 정도는 넘을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의례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누구 하나 아프면, 행복한 여유 끝이라는 절박한 마음이 서로를 이끈다. 공원에 나가면 꼭 들르는 곳이 운동기구를 모아놓은 장소이다. 어느 날 젊은 사람들이 철봉을 우습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났다. 턱걸이 스무 개쯤은 우습게 했던 케케묵은 기억 말이다. 아내의 우려 속에 호기롭게 철봉에 올랐으나, 두 팔로 몸을 지탱하기도 힘겹다. 당연히 턱걸이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항변해 보지만, 이미 기대를 접은 아내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늦었다. 과거는 과거다. 과거에 당연한 것이 현재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사이 공간은 너무나 넓고, 이미 긴 시간 달려왔다. 철봉을 멀리했던 시간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한, 스무 개쯤 우스웠던 기억은 현실이 아닌 추억으로 전락된다. 자존심이 여지없이 뭉개졌던 그날 이후, 꾸준히 철봉에 올라 용을 써본다. 이제 세 개는 거뜬해졌다. 새삼 목표가 생겼다. 왕년의 개수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열다섯 개를 오를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과거는 허상이다. 그때는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없다. 그럼에도 늘 착각을 한다. 마치 과거가 현재도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가 재림하려면 매 순간 스쳐 지나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더구나 몸이나 체력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매 순간 지나는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허상과 같은 과거에 미혹되어 버린다. 요즘 후회 막급한 것은 생각 만하고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는 말을 믿어보자. 운동하러 나가지 않을 이유가 생각나기 전에 아내를 채근해서 문을 나선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장소는 전기방재실이다. 과장 두 명이 같이 장소에서 근무하게 되어있다. 칠 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근무 기간이지만, 맞은편에 앉아있는 방재과장은 벌써 세 번째다. 두 번째 같이 근무했던 사람과는 가치관이 많이 일치했다. 그래서 오래 같이 근무하길 바랐는데, 딸의 지병 문제로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많이 아쉬웠었다. 이제 한 달여 세 번째 새로운 사람과 근무하고 있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나? 어쨌든 같이 있는 시간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며칠 같이 근무하다 헤어진다면, 참아내고 버티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기약이 없다. 내가 이곳에서 근무를 지속하는 한, 계속 같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심각한 일이다. 그래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왜 그 사람이 껄끄럽고 부담되는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반복되는 "내가 왕년에~~" 말투이다. 둘째는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매사 가르치려는 언행이다. 특히 왕년 시리즈는 처음 들으면서 솔깃하기도 했는데, 두세 번 반복되면서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된다. 퇴근길, 보라매 공원길을 가로질러 오면서 오늘도 잘 참아내었음을 안도한다.
역시 과거가 문제다. 자신이 경험한 알량한 과거가 모든 것에 기준이 된다. 과거가 굴레가 되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굴레'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나는 소와 말의 얼굴을 얽어매고는 고삐로 이어지게 한 모습이 떠오른다. 군생활 경험이 전부인 나는 상대적으로 과거를 숨기고 있다. 연금을 받으면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그래서 나의 말에는 과거가 없다. 온통 현재 이야기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과거 이야기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나뿐이 아니라 같이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싫증이 느껴진다. 결국 그의 과거가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라고 인식하는 그 순간마저 이미 현재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찰나의 현재 보다는, 늘 과거라는 바다에서 헤엄칠 수밖에 없다. 나의 과거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다. 과거는 현재를 알차게 꾸밀 수 있는 반면교사가 되거나, 추억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때 가장 가치가 있다. 그것이 허상과 굴레로만 작용되어 현재를 더 어렵게 만든다면, 차라리 잊고 지내는 게 나을 듯하다. 곧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에 충실하면서, 미래의 어떤 모습을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