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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읽어내는 감각

외로운 섬으로 살 것인가?

by 버티기

김장하기로 한 날, 아내는 퇴근하면 도와달라고 했었다. 이번엔 제대로 도움을 주겠다 다짐하며 퇴근했지만, 주문한 절인 배추가 도착하지 않았단다. 결국 다음 날로 미뤄지는 바람에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마음은 허탈(?)했지만 글 쓰는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근무하고 있는데, 고깃값 계산한 알림 문자가 떴다. 혼자 김장을 마치고 수육 준비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이미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아내가, "큰아들 불렀어. 김장한 김에 수육 먹고 가라고." 했다. 그렇다. 낮에 알림 문자에 뜬 고기를 먹어야 할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아들이 정돈되지 않은 파마머리를 날리며 들어왔다. 기분 전환한다며 파마한 후, 처음 봤을 땐 어색해 보였는데 이제 제법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인다. 허겁지겁 수육을 흡입하던 아들이 퇴사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툭 던졌다. 놀란 아내가 이유를 재촉하니, 씁쓸한 표정으로 "이 회사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라고 했다. 고기 먹을 주인공으로 만든 효과가 시작되고 있었다.


책임회피형 상사, 연봉 정체, 일이 자신에게 편중되는 것 등 다른 이유도 들었지만, 미래를 위한 계획적인 투자가 없다는 것을 가장 강조했다. 특히 AI를 이용한 업무 효율성 증대에 대한 계획적 투자가 부실하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자동차 디자인도 점차 AI로 가능한 분야가 확대되고 있어, 방향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하였다.


AI가 창의적 영역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고, 창의적인 일 만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 고정관념에 혼란이 왔다. 심각한 얼굴로 그간의 고민을 토로하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으니, 말해 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들어줄 대상으로 삼아, 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네이버로 답을 얻지 못할 때, 가끔 ChatGPT로 비슷한 답을 얻고 만족해한 적이 있다. 딱 거기까지가 전부다. 아들 말에 의하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했다. 그런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해 보려는 시도, 체감해 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과 대화를 회피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들이 가고 난 후, 급한 마음에 검색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뒤져봤다. AI는 이미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서 비정형적, 인지적 업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일자리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고, 업무 자동화 범위가 확대되면서 인력 감축은 불가피한 요소였다. 앞으로 AI를 업무조력자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돋보일 것 같은 추세였다. 그 갈림길에 서있는 아들의 고민이 읽혔다.


주제넘게 AI의 추세와 발전방향을 논하려는 건 아니고, 변화에 대한 감각을 말하려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시간 속에 있었던 세대가 변화를 인지하는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관성 속에서 안주하면, 아주 쉽게 섬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사색할 줄 모르고, 검색만 한다.'라고 탓했었다. 그런데 변화에 대응하기에 검색할 시간도 모자라고 또 벅차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학력 수준에 걸맞은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껴진 젊은 세대들의 단면이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견고한 틀 속에 갇힌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젊은 세대의 현실과 고민거리를 좀 더 이해하고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미래의 주인공들이기도 하지만, 외로움 섬으로 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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