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을 때가 있는데, 나에게는 지금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나는 어릴 때 춘천 후평동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의붓어머니 밑에서 독하게 시집살이하고 있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나를 낳자마자 독립을 결심하고 부모로부터 아무 지원도 받지 않은 채 춘천으로 이사했다.
그때, 아버지는 자식 교육에 대한 의무감이 희박했던 할아버지 덕에 적령기가 한참 지난 나이에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결혼해서 애를 낳고 연고지도 없는 춘천으로 무작정 이사를 했던 것이다.
춘천으로 이사하고 난 후, 내가 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나의 기억이 살아있는 다섯 살 무렵, 아버지는 춘천교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어머니는 뒷바라지를 위해서 국수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밖으로 나갈 때면 널어놓은 국수를 헤치면서 가야 했고, 가끔 친구들과 놀다 보면 저만치서 큼지막한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국수를 팔러 다니는 어머니를 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네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생활이 더 곤궁해졌고, 하루하루 먹는 것이 떨어져 끼니를 굶어야 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웃으면서 한 이야기지만, 오죽 먹을 게 없었으면 내가 자다가 일어나 머리맡에 놓아둔 남동생 똥을 고구마인 줄 알고 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2년제였던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근무지로 부임하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악전고투였다.
아버지 학교 다니는 뒷바라지는 물론, 애 둘에 국수장사도 하면서 살림살이를 꾸려갔으니까 말이다.
누구든 다섯 살 때 기억이 잘 나기는 어려운데, 나는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려웠던 생활에 어머니가 고생한 기억은 듬성듬성 떠오르고 있다.
사건은 바로 이즈음에 일어났다.
어머니는 동생을 둘러업은 채로 나와 함께 시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었는데, 장마 뒤끝이라 물이 제법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발을 깨끗이 씻으라고 해서 빨랫돌에 앉아 씻고 있었는데, 비누칠을 하니까 기울어진 빨랫돌을 따라 미끄러져 그만 물에 빠져 버렸다.
어머니는 빨래에 열중하고 있어서 아래쪽 빨랫돌에서 미끄러져 들어간 나를 보지 못했었다.
물살이 빨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던 나는 다행히 한참 아래쪽에서 빨래하시던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어 살아날 수 있었다.
구세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건져냈을 때는, 이미 물을 먹을 대로 먹어 배가 볼록하고 의식이 가물가물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혼비백산하여 나를 안고 다행히 가까이에 있던 의원으로 달려갔고, 의사의 응급치료를 받고서야 가까스로 의식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반쯤 죽다가 살아난 것이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엄청난 원망의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는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내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어린 마음에도 무척 죄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만 원망을 쏟아놓는 아버지가 밉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어머니가 죄인처럼 온몸으로 원망을 받아내는 장면이 기억난다.
훗날 같은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데, 남동생 한 명이 연못에, 또 한 명이 장마 때 우물에 빠져 다른 사람에 의해 구해져서 살아나는 일 때문이었다.
내가 좋은 전통(?)을 세워놓은 후, 줄줄이 생사를 오간 걸 보면 우리 형제들은 정말 물 하고는 악연이었나 보다.
1965년 무렵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어려웠다.
그때 당시, 아마도 집안마다 우여곡절을 겪고 헤쳐 나온 역사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형제가 모두 온전히 커나가기가 어려웠다.
사고가 나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면서 죽어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쩌면 우리 형제들도 불행한 일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냥 운이 좋았던 거다.
내가 어릴 적 일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것은, 정성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의 나는 예사롭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려웠던 시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절망과 탄식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버텨온 그분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소설가 장파울은 이렇게 말했나 보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