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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버티기
Mar 20. 2023
이젠 갈등의 늪을 벗어나고 싶다
나와 아내 사이에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갈등이 있다
.
어쩌다 그 갈등이 불거지게 되면 아내는 늘 레퍼토리를 한 바퀴 돌리면서 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굳이 이 갈등의 이름을 붙이라고 하면
‘
그놈의 자식 된 도리
’
라고나 할까.
갈등이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각 가정의 문화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처가는 자식들에게 가능한 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가풍이 있다.
특히 경제적인 부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모들이 모두 해결하고 자식들에게는 절대 손 내밀지 않았다.
홀로 된 장모의 요양병원비도 직접 해결하고 있고, 심지어 자식들이 예의상 무엇을 사 오든 곧바로 그 값을 치르어 주었다.
오히려 이제까지 자식들이 필요할 때 어떤 형태로든 경제적인 도움을 주어왔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부모가 부담이 되면 안 된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반면에 모든 의사결정권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친가는, 가능한 ‘자식 된 도리’를 많이 요구하는 가풍이 있다.
아버지는 금전적인 도움을 요구할 때면 항상
‘자식 된 도리’
를 앞세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에 더하여
‘장남 된 도리’
가 여지없이 추가되고는 했다.
생활의 여유가 그리 녹록지 않은 동생들을 설득해서 정해진 요구금액을 맞추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리고 ‘장남 된 도리’와 설득의 묘를 살리기 위해서는 매번 나의 할당 몫을 크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중요한 날 드리는 용돈은 예외로 하고, 병원비, 전시회 비용, 생신잔치 비용 등이 이러한 절차를 거쳐 아버지에게로 들어갔다.
나는 이런 가풍의 차이를 맞고, 틀리고의 문제로 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어느 집이든 본래 형성되어 있거나 새로 만들어온 고유한 질서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풍의 극단적 차이에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모의 요구가 있다면 어느 정도 도움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아내는 서둘러 목돈을 마련해 집이라도 장만하려 아끼고 아껴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나마 모아둔 돈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더구나 결혼식 때 아버지가 비용을 많이 보태준 것도 아닌 데다,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어서 웬만하면 자비로 해결해도 되는데’라고 생각하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친가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갈등으로 증폭되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이런 갈등이 더 증폭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나는 진해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포항의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남동생이 원주에서 부모님도 모시고 오고 결혼식도 도와주고 했었다.
이 남동생이 우리가 신혼여행 갔다가 친가에 방문한 첫날밤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가 장사를 치르고 올라오는 분위기는 정말 좋지 않았다.
결국 포항에서 올라온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아버지가 “며느리가 잘 못 들어오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면서,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는 말을 한 것이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아 식사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나는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면서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틀어진 아버지와 아내의 관계가 시간이 가도 호전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훗날 다시 한번 아버지가 그 말을 하는 바람에 더 깊은 상처로 남아버렸다.
사실 아내 이야기만 해서 그렇지 그동안 나도 정말 힘들었다.
결혼생활 내내 친가 쪽 역성을 좀 들라치면, 아내로부터 온갖 싫은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혼자서 분을 삭였다.
게다가 아들들도 엄마와 생각이 같아, 친가 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눈치여서 갈등만 불거지면 외톨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 갈등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조의금 문제로 최악에 달했었고, 지금까지는 특별한 이슈가 없어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지만, 아내가 워낙 요지부동이었고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들게 보였다.
어떻게든 갈등을 줄이자면 내가 다르게 행동하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소통이 줄어들면서 관계도 소원해졌다.
이제 팔십 중반을 지나는 홀로 된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기는 하지만, 억지로 유지되는 것이라도
‘나는 이 평화가 정말 좋다.’
라고 말하고 싶다.
당분간 아버지와 소원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그동안 아내와의 갈등으로 인한 감정의 골을 줄여가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제는 환갑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이 갈등의 늪을 벗어나서 아내와 서로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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