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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r 25. 2023

나 돌아갈래

최근 들어,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시기는 대략 글쓰기를 시작한 어간이라고 생각된다.

글을 쓰니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사유가 많아졌다.

과거를 뒤돌아보니 반성할 것도 많아지고, 또 현재는 잘 살고 있는지 자꾸 점검해 보게 된다.

거기다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면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타래가 된다.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 그리고 지금은 작고한 작가 박완서와 박경리는 '인생을 다시 되돌린다면 언제가 좋을까?'라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70대를 말하였다.

이들이 70대를 택한 이유는 이전에 지고 있던 가정적, 사회적 책임감을 내려놓고, 자기만족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인생황혼기에 접어든 74세에서 삶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최근에 TV 예능프로에도 등장하는 일타강사 이지영 씨가 "고3 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여기서 펑펑 울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틱톡에 올려진 영상에서 보았다.

그 이유로 정말 독하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후회가 없는 것도 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제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수종합학원에 가서 "너희들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라고 물으니, 전부 “고 3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 위치에 있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말이다.

     

'초록물고기'라는 작품으로 연출을 시작했던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박하사탕'을 보았었다.

'초록물고기'에 한석규가 있었다면, '박하사탕'에는 설경구가 있었다.

모두 연기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이어서 그들 작품들을 즐겨 보았다.

배우 설경구가 친구들과의 야유회에서 깽판을 치고, 기찻길 위에 서서 "나 돌아갈래." 하면서 외치는 '박하사탕'의 장면이 떠오른다.

여기서 "나 돌아갈래."는 아마 순수했던 순임과 첫사랑을 하고 박하사탕을 받았던, 20년 전의 젊고 아름다운 행복했던 시기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

젊은 시절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현재를 누리는 사람들의 경우, 이들은 설령 젊음이 주어진다 해도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노력이 부족했거나 잘못된 판단을 해서 현재가 망가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시기로 돌아가서 다시 잘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생각해 보건대 나 같은 경우는 명확하게 후자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해도 고 3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의 의지보다는 아버지의 의지로 좌우되었던 그때의 상황이 그대로라면, 바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해군 소위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다.

30년 넘게 군 생활을 했어도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고 방향도 선명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있다.

마치 재수종합학원 원생들이 고 3으로 돌아가서 더 잘해보겠다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무엇보다 더 큰 회한이 들게 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하면서 때늦은 후회가 밀려오게 만드는 아들들과의 관계이다.

그래서 큰 아들이 태어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만약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 어릴 때 부대 일의 빡빡함을 핑계로 쉬는 날이면 혼자 휴식을 즐기고, 혹시 모를 불이익을 염려해서 집보다는 회식장소로 먼저 달려갔던 것을 모두 되돌리려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 ‘공부 보다도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라는 미명하에 강압적인 방법도 불사했던 현명하지 못한 행동도 모두 지워버리려 한다. 

그리고 수시로 아이들과 서로 체온을 나누고 살을 부대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아들들이 커가면서 자신을 위해서 만도 아니고, 부모를 위해서 만도 아니고, 그들의 삶 자체를 위해 커나갈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어쩌지 못하는 일이 되었지만,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나 돌아갈래.”하며 외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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