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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Apr 15. 2021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퇴사를 한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체육 특기생 출신으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는 운이 좋게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만 5년을 다닌 회사. 첫 직장인만큼 의욕도 넘치고 열정적인 신입사원이었다. 상사와 그리고 선배들과 피우는 담배, 퇴근 후 조촐한 회식, 심지어 피시방에서 게임까지 그런 모든 사소한 것들이 직장인이 된 것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회사가 서서히 경영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비상 경영체제로 돌입하고 낙엽이 날릴듯한 분위기에 직원들은 하나둘 이직하기 시작했다. 떠나간 직원의 업무를 모두 넘겨받은 남은 직원들은 하루하루 얼굴이 굳어져갔다. 나 또한 이직을 열심히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어느 날부터는 회사에 앉아있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무의미한 시간들이 매우 아까웠다. 이직이 안되더라도 이곳을 당장 떠나고 싶었다. 결국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퇴사를 하게 되었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은 있었다. 퇴사 후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쇠약해진 정신과 육체에 대한 건강도 챙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퇴사 후 나태해지지 않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야지 라고 다짐했건만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퇴직금으로 돈 좀 벌어 보겠다고 주식과 비트코인 차트를 하루 종일 쳐다보았으며, 읽으려고 사놓은 책들은 눈앞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바깥 날씨가 청명하여도 어둑한 나의 방구석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낄낄거렸고. 바깥은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이렇게 잉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속엔 늘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늘 다음날로 미루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수록 나에 대한 실망감과 자책감 그리고 자존감이 하루하루 바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서른 초반의 나는 그렇게 작은 방구석을 빙빙 돌며 방황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철학 관련 채널에서 이러한 말을 들었다. 프랑스 철학가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다. 본질은 어떤 것이 존재하는 이유나 목적이라 한다. 예를 들어 의자의 본질은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다니는 박스도 앉을 수 있다면 그건 의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나 목적, 기능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인간은 늘 선택과 불안을 겪고 산다고 하는데 자유를 선고받은 인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현재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이 가치가 있는 행동이라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나의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러한 고통들이 지속되면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지 나에 대해 실험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대로 계속 나태한 상태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영감을 얻어 다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지 말이다. 


두서없이 글을 써내려 왔다. 아마도 나는 글로써 나의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나 보다. 늘 끝맺음은 어렵다. 중간에 꺼져버린 영화처럼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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