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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Jun 22. 2021

나오지 마세요 할머니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또는 가정의 어떠한 이유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아이들일것이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내가 30대가 된 만큼 할머니도 많이 늙고 쇠약해지셨다. 초등학생 때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와서 크게 혼나기도 하고 중학생 운동선수가 되었을 때는 사골국을 끓여주시기도 하였다. 고등학생 때 졸업식 사진은 할머니와 단둘이 찍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20살 대학생이 되고 난 후 할머니는 지금까지 홀로 지내셨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일터에 나가고 방에 홀로 누워서 온종일 트로트 방송을 틀어놓으셨다. 명절 때마다 하루만 더 있다 가라고 하시면 가족들은 출근과 장사를 핑계 삼아 일찍이 고향집을 떠났다.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딱히 바쁜 일이 없기에 명절 휴일을 꽉 채워 할머니 곁에 있었다.


 할머니는 핸드폰의 단축번호를 바꿔달라, 냉장고 위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 달라, 시계 약을 바꿔달라 등등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올 때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머니랑 더 오래 같이 살았으면 이런 불편함은 바로바로 해소해드렸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서울로 올라갈 때 할머니는 항상 아픈 몸을 이끌고 문밖까지 나오신다.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까지 어떤 날은 아파트 1층 주차장까지 내려오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나오지 마세요 라고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굳이 힘들게 나오시니 나의 맘이 편하지 않았다. 


 최근 할머니는 집을 이사했다. 날이 갈수록 몸이 편찮아지셔서 고모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이후로 할머니에게 더 자주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끝은 항상 언제 오니, 한번 놀러 와라,였다. 요즘 가족들도 평소보다 더 많이 찾아뵙고 있다.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할머니와 함께 보내셨을 텐데 


 지난달 할머니 집을 방문하고 서울로 올라갈 때 할머니는 역시나 또 마중을 나오신다고 지팡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또 할머니 나오지 마세요. 집에 계세요. 괜찮아요.라고 했지만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잘 가라는 손짓 그리고 눈물. 자동차 백미러 안으로 할머니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어쩌면 모든 지난날 할머니는 항상 그렇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싶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늘 마음이 아렸다. 항상 건강하기만 할 줄 알았던 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니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더 자주 전화하고 더 자주 찾아뵙는 손주가 되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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