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기차여행이라도 가볼까. 기차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줄곧 상상했다. 모 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나서부터다. 그는 호텔을 빌려 글을 쓰는 다른 작가의 이야기와 기차 안에서 글을 썼더니 꽤 효율이 좋더라는 본인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버스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던 기억이 있었다. 흔들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생각해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문장들, 잊고 있던 쓸만한 기억들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나는 놓칠세라 휴대폰 메모장에 적고, 여유가 있으면 늘 메고 다니는 백팩의 지퍼를 열어 작고 진한 초록색의 노트를 꺼내곤 했다.
이 노트는 언젠가 로프트를 구경하면서 초록색에 마음을 빼앗기고 단숨에 골랐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설현장의 측량사와 토목기사를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했다. 표지도 내지도 무척 얇은데, 이상할 정도로 표지는 딱딱하고, 내지는 어떤 펜이던 배김 없이 잘 써진다. 그 크기로 보면 노트보다는 수첩에 가까운데, 여행을 떠날 때 주로 사용하는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여행에도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 노트가 60여 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련히 잘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글은 물론이고 노트나 펜, 영화도 드라마도 나쁜 점, 부족해 보이는 점이 눈에 띄어도 섣불리 탓하지 않기를 노력한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아 내게로 온 것이 틀림없고, 그것이 만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할 수 있는 만큼보다 덜 애쓴 것을 스스로 눈치채며 모른 척하고 있을 때 나는 한동안이나 괴로움에 시달린다. 특히 타인의 돈과 맞바꿀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낼 때 그렇고, 대개는 글을 써 나가는 일에 대해 그렇다. 글쓰기에 관해 내가 믿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는 누구라도 수정의 과정을 거치면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누구라도’의 안에는 나도 물론 포함되는데 종종 그 문장 덕분에 위안을 얻는다. 때로는 그 문장 때문에 좌절한다. 고쳐 쓸수록 나아지는 것을 믿으면서도 주로 귀찮다거나 시간이 없다 같은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괴로운 것은 고쳐쓸 글 마저 쓸 수 없는 허공 같은 마음이다. 글감옥에 갇혀 쓰지도, 고쳐 쓰지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어째서 이곳에 갇혀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쓰고 싶은 글은 많은데 막상 쓰려고 하면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쓰는 사람’에게는 꼭 한 번씩 이런 시련이나 고비가 온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게 여겨지지만 때때로 괴로운 마음은 여전하다. 그깟 거 안 쓰면 그만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뭐하나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부럽거나 대단하다거나 신기하다거나 생각하며 어쨌든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목적이나 목표 없이 허공에 붙들려 웅크리고 있는 날이면 혹시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슬쩍 든다.
오늘은 진짜 알찬 하루였다 되새기며 기쁘게 눈감는 날이 있다. 때로는 하루 중에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해도, 밤 무렵 어느 시간이 되면 ‘한 것도 없는데 벌써’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자꾸 겹치면 끝내는 무기력한 날들, 무기력한 내가 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보이지는 않아도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존재. 경험에 따라 나는 그 존재를 쓰러뜨릴만한 몇 개의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싱거울지 모르지만 다름 아닌 읽기와 쓰기다. 글쓰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방법은, 뭐가 됐든 간에 일정 분량 이상 써 놓는 것이다. 왠지 하릴없이 흐른 것 같은 날이라도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써내는 것이다. 짧은 글도 좋지만, 언제라도 할 수 있겠다 여겨지는 있는 메모의 형식보다는 - 물론 아주 임팩트 있는 한 줄이라면 예외가 되는데, 그것은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 우선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좋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전략은 읽기에도 물론 포함된다.
아무런 영감도 뮤즈도 없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들 혹은 그것들을 찾아 나서거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수밖에 없다. 책상에 앉아 뭐라도 하려면 목마를 것을 대비해 따뜻한 얼그레이나 드립 커피 같은 음료, 그리고 함께 먹을 작은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겨울날이면 책상 아래 따뜻한 온풍기도 켜 두어야 하고 여로모로 할 일이 많다. 모든 준비를 마치면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데, 가끔은(아니, 자주) 그런 일들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만다. 정작 하려고 했던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거나 ‘찔끔’하는 내가 정말 한탄스럽게 느껴진다.
소설가 정여울은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방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기술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저것 탓하지 않고, 글감옥에 갇혀 괴로워하지도 않고 싶어 진다. 곧 기차표를 예약해둘 참이다. 좌석이 좁아 옆 사람에게 폐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걱정은 미뤄둘 것이다. 사람이 없는 노선을 잘 골라낸 다음, 한정 없이 적어 나가다가 끝내는 외딴 바다에 다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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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트 : 일본의 대형 문구체인
정여울의 이야기 : <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