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트바스 Nov 01. 2020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묘비는 너무 작으니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막 스물이 된 사람부터 서른이 훌쩍 넘은 사람까지 함께 모인 독서모임 자리였다. 자주 그렇듯이 우리는 지난 일주일간의 소식을 전하며 입을 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 주제는 감정과 관련된 것이었고, 발제자는 그 시작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관한 질문을 건넸다. 나도 곧 그 질문에 예외 없이 답을 내놓아야만 할 처지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걸까.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는 누가 와 줄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마땅히 꺼내 둘 말이 없어 딴청을 피웠다.


“저는 그냥 없던 사람처럼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맞은편 남자애가 처음으로 답했다. 그 옆에 앉은 여자애가 동조했다.

“저도요. 세상에 저에 대한 게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눈이 크게 떠졌다. 나는 ‘어떤 형태의 좋은 사람’으로 남을까 내내 그런 생각만 했다. 아예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도 가끔은 내 존재를 꽁꽁 숨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나에 대한 모든 기억조차 내가 안고 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내가 대답할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여전히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말들에 대해 정확히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여전히 찾는 중인 걸까. 그들의 말처럼 없던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다 싶다가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묘비에 어떤 말을 새겨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한 나는 자주 생각하면서도 묘비에 적힐 말을 끝내 생각해내지 못했었다. 세상에 온갖 변명을 남겨두고 가고 싶은데, 묘비는 너무 작으니까. 나는 그래서, 매일 이렇게 긴 글을 적는지도 모른다.






 ‘묘비’하면 자주 생각나는 문장 하나.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극작가로 알려진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이다. 나는 두고두고 이 말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 묘비명으로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