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크림 스콘 만들기 (레시피)
맛있는 빵이란 뭘까?
내 동거인은 좋아하는 빵으로 소시지가 든 피자빵을 1순위로 꼽는다. 좋아하는 빵을 생각해보면 얼마 전 맛들이기 시작한 까눌레를 빼놓을 수 없다. 한동안 즐겨먹었던 브리오슈도 최고였는데. 과연 고르기 어렵다. 빵이란 모름지기 쫀득할 것을 기대할 때 쫀득함이, 바삭할 것을 기대할 때 바삭함이 느껴져야 최고의 빵 아닐까? 간이 잘 맞고* 재료의 맛이 조화로워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막 구워낸 빵'이다.
* 전엔 몰랐다. 빵에 소금이 들어가는 줄은.
남자 친구와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하면서, 에어 프라이기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것은 '공기로 굽는다'는 요상한 슬로건을 달고 세상에 나와, 자취계를 휩쓸고 우리 집에도 정착하게 된 것이다. 7개월만 살기로 했기 때문에 이삿짐을 늘리는 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전자레인지에 밥솥까지 옵션으로 얻어냈지만, 에어 프라이기만큼은 꼭 한번 써보고 싶어서 큰 놈으로 하나 장만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그걸로 빵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마법 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오븐이라는 기계는 전혀 구경하지 못하고 자랐다. 오븐 같은 건 부잣집에나 있는 줄로 알음알음 생각했다. 좀 큰 집에 놀러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가전제품이었다. 그런데 오븐도 아닌 것이 빵을 만들 수 있다니.
며칠을 고민하다가 크로와상 생지*를 주문했다.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고 몇 개를 꺼내 당장 에어 프라이기에 구웠다. 밀가루 덩어리는 정말로 고소한 빵이 되었다. 이토록 촉촉하고 쫄깃한 빵이 세상에 있었나. 심지어 이렇게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니. 빵 굽는 냄새가 이렇게 향기롭다니. 내가 처음 '자가 제빵'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날이었다. 냉동실에 잔뜩 넣어둔 크로와상은 아침식사로, 야식으로 순식간에 동이 났다.
*에어 프라이기가 오븐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채 하지 못했다.
*생지 : 빵을 굽기 직전의 반죽상태.
같은 해, 우리는 교토에 있는 새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식어빠진 낡은 치킨을 새 치킨으로 만들어주던 환상의 에어 프라이기와는 이별이었다. 웬만한 캐리어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묵직한 크기도 크기지만, 한국과는 전압이 달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교토에는 '옵션'같은 비빌 언덕이 없다. 우리는 세탁기와 냉장고는 물론이고, 전구 하나까지 전부 사야 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전자상가에서 구입하고, 부족한 것은 틈틈이 사기로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동안 날마다 들른 곳이 있었으니, 가전제품 중고샵이었다. 교토에는 대학교가 많아서인지 중고 샾이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대충 삼일에 한 번꼴로 들르면 새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동네 중고 샾 세 군데를 번갈아 돌아다니며 밥상이 될 코타츠*와 서랍장, 빨래건조대 따위를 샀다.
* 코타츠(こたつ ) : 일본에서 쓰이는 온열기구로, 나무로 만든 밥상에 이불이나 담요 등을 덮은 것.
그날따라 중고 샾에서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그건 아주 거대한 오븐이었다. 중고샵에 이렇게 깨끗한 오븐이 있다니. 막 샾에 들어왔는지 가격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점원에게 가격을 물으니 잠깐 고민하더니 15,000엔을 불렀다. 원화로 치자면 15만 원. 좀 비싸긴 하지만, 전자레인지 겸용이니 괜찮지 않을까? 오븐은 언감생심이지만, 전자레인지는 무조건 사야 하는 품목이었다. 재빨리 제품명을 검색했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새 상품의 가격은 얼마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80만 원! 우리는 단숨에 구입을 결정했다. 나는 오븐은 써본 적 없지만, 에어 프라이기 경력이 있으니 잘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못써도 전자레인지는 꼭 필요하니까. 하고 합리화 과정을 거쳤다. 100리터가 조금 넘는 우리 집 미니 냉장고 위에 두면 겨우 들어맞을 것 같은 크기인 게 좀 부담스럽긴 해도, 80만 원짜리를 15만 원에 샀다고 생각하니, 한국 갈 때 들고 가지 뭐- 하고 왠지 신이 났다.
집에 오븐을 들여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나는 종종 빵 만들기를 시도했다. 오븐의 일은 단연 빵을 구워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빵이야말로 가스렌인지나 인덕션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음식 아니던가. 프라이팬으로 굽는 핫케이크 말고, 정식으로 빵을 만들고 싶어 졌다. 나는 바게트를 만들고 쿠키를 구웠다. 바게트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사 먹는 게 월등히 맛있고 월-등히 빨랐다. 써브웨이(SUBWAY) 스타일의 쿠키를 만들겠다며 야심 차게 구워냈으나, 엄청난 버터와 설탕의 양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둘이 나눠먹기에는 꽤 많은 쿠키가 만들어졌는데, 나는 그 쿠키를 집어먹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겨우 쿠키를 다 먹어 치우고, 한동안은 밀가루를 멀리 했다. 반죽도 싫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설거지도 싫었다.
* 쫀득한 서브웨이 쿠키를 진짜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좋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망각의 동물(=나)은 집에 남은 밀가루를 보며, 또 한 번 빵 굽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플리마켓에서 갖가지 스콘과 머랭 쿠키를 만들어 팔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는 스콘은 뒤로하고 자주 머랭 쿠키만 골라 사 먹었다. 내가 사 먹지 않던 더 스콘은 자주 'sold-out'이라는 팻말이 따라붙었는데, 얼마나 맛있길래 매번 다 팔려버리는 걸까? 하고 종종 생각했었다.
내 기억 속 첫 스콘은 퍽퍽함 그 자체였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스콘이 아니라 비스켓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가 KFC의 비스켓을 좋아했는데,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 참 맛있는 표정으로 먹던 그 애 얼굴이 떠오른다. 절반쯤 떼어 나에게도 먹어보라 권하곤 했다. 아무 맛도 안나는 (줄 알았던) 버터를 발라먹는 게 왠지 이상해서, 빵도 과자도 아닌 퍽퍽한 비스켓을 나는 그저 딸기잼에 기대어 먹었다. 물론 콜라도 함께.
스콘. 스래 스콘을 굽자. 그렇게 좋아하는 빵은 아니지만, 정 퍽퍽하면 커피랑 먹으면 되는걸. 퍽퍽하긴 해도 꽤 고소했던 그 비스켓의 맛이라면 한 번쯤 구워보고 싶어 졌다. 게다가 스콘은 '초보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빵'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당장 레시피를 수소문했다. 여느 요리가 그렇듯 적당히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기는 쉬워도, '맛있게'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는 어렵다. 한 번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요행을 바라는 욕심이니까. 간단히 말해서 나의 첫 스콘은 실패했다는 뜻이다. 레시피를 무시한 채 들이부은 소금 덕분에, 먹을 때마다 혓바닥이 아린 '아린 맛 스콘'이 됐다.
생크림 스콘 만들기
실패한 스콘들을 뒤로하고, 개선 끝에 빠르고 간단하게 만드는 생크림 스콘을 소개한다. 버터 없이 생크림을 활용해서 버터를 녹이거나 자를 필요가 없어 더 편하고, 식감은 부드럽다. 생크림 스콘은 수가지 레시피 중에서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 아닐까? 반죽을 위한 볼(bowl, 우묵한 그릇)도 하나면 충분하다. 설거지도 간단하다. 집에서 놀고 있는 오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깨워서 활용해보자. 충분히 만족스러울 테니까. 평소에 베이킹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집에 있는 재료에 당장 생크림만 사 온다면 금세 만들어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갓 구운 빵을 먹는 호사를 누려보자.
반죽 재료
밀가루(중력분) 200g
생크림 200g
베이킹파우더 3g
설탕 40g
소금 3g
소량의 계란물(우유나 생크림도 가능, 생략 가능)
부재료
치즈(체다치즈, 롤치즈 등)
건과일(무화과, 블루베리, 크렌베리, 건포도 등)
견과류(호두, 피간 등)
차류(녹차, 말차, 홍차 등 - 가루나 티백도 좋다)
만드는 방법
1) 가루류를 계량하고 볼에 넣어 섞는다.
2) 생크림을 넣고 주걱으로 대충 섞는다.
3) 부재료가 있으면 부재료를 잘라 넣고 섞어 반죽 덩어리로 만든다.
4) 랩을 씌워 30분 이상 냉장고에서 숙성한다.
5) 숙성된 반죽을 꺼내고 오븐을 180도로 예열한다
6) 반죽을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한다. (약 3cm 두께로)
7) 성형된 반죽을 팬에 올리고, 뒷부분에 계란물을 살짝 펴 바른다 (생략 가능)
8) 20분 내외로 굽는다. (물론, 에어 프라이기도 가능하다!)
한 줄 요약 : 다 섞고 30분 놔뒀다가 180도에 20분 정도 굽는다.
맛있게 먹기
・커피나 우유 등 음료와 곁들여 먹는다.
・딸기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는다.
・반으로 자른 스콘에 버터와 팥앙금을 넣어 '앙버터 스콘'을 만들어 먹는다.
적당한 크기의 스콘 5~6개 분량으로, 설탕과 소금의 양은 부재료에 따라 혹은 취향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 치즈나 건과일 등 달콤 짭짤한 지료를 추가하면 잼이나 버터 없이도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밀가루 대신 통밀가루로 만들면 더 건강한 스콘이 된다. 부재료를 넣지 않으면 이 레시피에서 말하는 기본 생크림 스콘이 되는데, 기본 스콘도 촉촉하고 맛이 좋다. 생크림 스콘에 성공했다면 다음번에는 조금 더 특별한 맛의 스콘 만들기에 도전해보자. 잘게 썬 대파를 기름 없이 살짝 볶고, 체다치즈와 베이컨을 함께 넣어 만들면 대파 치즈 스콘, 말차가루와 초코칩을 넣으면 초코 말차 스콘이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