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꿈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글자를 배운 후로는 꾸준히 장래희망란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썼다. 다른 애들처럼 배포가 크지는 못해서 대통령이나 과학자 같은 건 쓰지 못했는데, 친구를 따라 디자이너를 적기도 하고, 이은결이 멋져 보여서 마술사를 적어낸 해도 있었다. 마술사라는 장래희망은 친구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소심한 나는 상처 받고 또 다른 장래희망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처음 교복을 입던 해에는 유치원 교사를 꿈으로 적어냈다. ‘선생님’이 되고 싶긴 한데, 대학교수는 너무 멀어 보이고, 몸보다 머리가 먼저 자란 십대 애들을 상대하는 건 좀 두렵게 느껴져서 유치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를 잘 돌본다는 칭찬도 많이 들어서 꽤 자신이 있었다.
그 후로 유아교육과에 진학한 나는 어김없이 선생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선생님이 되었다. 오랫동안 꿈꾸는 사람은 그렇게 된다더라 하는 말을 나는 믿는다. 천재성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세상엔 의외로 아주 특별한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기회가 많다.
나는 기어코 선생님이 되긴 되었으나 어딘가 아쉬웠다. 유치원에 취직하는 일을 뒤로하고 교육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10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한참이나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회사에서도 나는 선생님이라 불렸지만 내 직업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지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한국사회에서 인정받는 선생님이란 왠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근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업과 진학의 기로에 선 시절의 나는, 돈벌이를 위해 어딘가에 취직하면 ‘장래희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저 ‘회사원’이 된다고 여겼다. 그동안 내가 본 어느 누구도 장래희망을 회사원이라고 적어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의도하지 않게 내 직업을 '회사원'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퇴사 후에도 내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어린시절 장래희망란에 적어냈던, 수식어가 필요없는, 번듯한 직업인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그득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산다. 나는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이라 소개할 수 있을까?
퇴사 후, 제주에 살며 처음 ‘작가’라는 호칭을 들었다. 그때의 나는 공예품 만드는 일을 했는데, 손님들은 나를 작가로 불러주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단어 하나에 잠깐 동안 설레었다. 작가라니! 회사원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어였다. 언젠가 장래희망으로 차마 써내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꿈 중에 하나였다. 그곳에서 나는 뭔가를 만들고 뭐라도 쓰며, 가끔은 나도 진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 예술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가수 김완선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는 ‘90년대 톱스타 김완선’을 회상하는 리포터에게 최근까지도 계속 음반을 내왔다고 말한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음반을 낸 이유는, 가수로서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를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 쉬지 않고 신곡을 내는 가수라는 명분. 그러면서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이게 맞는지 쉴새 없이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얘기를 듣게된다.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어떤 식으로든 자기표현을 하고 사는 사람이 아티스트예요.”
김완선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하는 일’에 대해 완벽하게 답을 내린다.
그 인터뷰를 보고 난 후, 나는 아티스트라는 말이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아티스트라는 건 특별한 이유 없이도 뭔가를 해 낼 수 있는 크고 든든한 무기 같았다. 대학을 다니며 ‘창의력’이라는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회사에 다닐 때도 창조성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둘을 합치면 무려 6개월 넘게 창조성에 대해 배운 것이다. 예술가가 하는 일이 꾸준한 자기표현이라면, 그것은 창조성이라는 단어와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 나에게도 조금은 자격이 있는 거 아닐까?
내게 예술가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깊어서, 스스로 예술가라 칭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주 신기해했다. 예술가라니. 예술가는 고흐나 다빈치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 아닌가. 혹은 거대한 이젤 앞에서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까맣고 큰 카메라를 들고 자연의 순간을 찾는 사람만이 예술가라 혼자 여겼다. 그저 먼발치에서 예술가라 말하고 불리는 이들을 동경해본다. 언젠가 한 번쯤은 그런 멋진 직업을 가져보고 싶어 진다. 일생에 한 번은 예술가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해본다. 예술가라는 무기를 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용기가 날 것만 같다.
요즘은 내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무업인으로 산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하다. 오스틴 클레온은 자신의 저서<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몇몇 문장들로 나에게 힘을 팍팍 준다. 미적거리고 있는 일, 심심해서 해보는 일들이 중요하다던가, 두세 가지 열정을 갖고 있다면 굳이 하나만 고르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들이다. 내 직업은 무엇이었고, 무엇일까에 대해 여전히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결정해본다. 심플하고, 나이스한 생활예술인이 되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