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어때 #14
주변 친한 이들에게 이혼했음을 얘기했을 때 다들 놀라는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네가 어쩌다가."
"괜찮아. 이혼자가 한 둘이니. 요새 500만 시대라고 하더라."
"괜찮으세요? 두 분은 정말 그럴 일이 전혀 없어 보였는데. 에고. 힘내세요."
그들은 어떤 식으로 위로를 할지 고민했다. 어떤 이는 가벼운 웃음과 괜찮다는 말로, 어떤 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어떡하냐는 말로 슬픔을 드러냈다. 어떤 방식이 내게 좀 더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결같이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은 잘 전달받았다.
이혼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은연중에 내 존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담배를 피울 때도.
"저녁 혼자 드셔야 하자나요? 시간 되시면 같이 하시죠."
컵밥 잔뜩 사놔서, 그거 해치워야 하는데.
"어자피 집에 가도 할 일 없자나! 오늘 모임이나 같이 가자고."
넷플릭스 봐야 하거든? 할 일 많아 자슥아.
"많이 드세요. 집에 가서 드시면 변변치 않을 텐데."
아이고.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 배려는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괜히 공개했을까’라는 약간의 후회가 들 때도 더러 있었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것은 마치 장애인들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반인으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랑 비슷할지 모르겠다.
그 배려와 신경은 가끔 '나는 괜찮아요'라는 억지 표현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으니까.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어서 좋겠어."
남자들끼리 이런 말이 오고 갈 때가 있다. 그것은 위로의 의도가 다분하지만 사실 이혼남의 처지를 생각하면 정말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날의 생기발랄한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그때보다 우위일 거라고 짐작되는 경제력마저 재산 분할로 기대 이하의 가치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또 다른 이성을 만날 기회라는 판타지적 메시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잖아."
구속받지 않으니 편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의도겠지.
하지만 진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니 있다가 없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핑크빛의 '아름다운 구속'은 아니라도 가족의 구속은 안정감과 내일을 위한 의지를 주는 관계의 끈이다. 그 끈이 없어진 것은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임과 동시에, 내가 무엇을 하든 지켜봐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지.
"시간 많으니 이것저것 해봐."
둘에서 혼자가 된다는 건 의무적인 시간 소비가 적어지는 대신, 둘이 할 일을 혼자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집안 일과 미래에 대한 계획과 실천, 심지어 건강관리까지 오롯이 혼자 시작하고 종결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혼의 나와는 엄연히 다른데, 이미 결혼생활을 통해 알게 되고 익숙해진 것들을 통해 삶의 밀도와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연에 대한 가능성과 구속받지 않는 자유의지 그리고 시간. 이 모든 것은 분명 홀로 된 나에게 주어진 기회일 수도 있다. 좋게 말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나마 영위하던 건강한 삶도 나빠질 수 있다.
과거부터 홀아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과 건강 등의 삶 모든 것들이 나빠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놓인 상황에 대한 시선은 우려와 걱정이 훨씬 클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 다른 여러 시선과 관심이 나를 향한 애정임을 알기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마저도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고 관계일 테니.
소중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의 시간이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 그와 같이 대화하는 시간, 그리고 내가 그를 생각하는 시간.
인생의 절반쯤 나의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지금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이고 사랑이니까.
넓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은 나로부터, 남아있는 인연을 지키고 다듬는 나로 바꾸며 더 이상 주변 사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