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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Nov 29. 2020

눈을 기다린다

'처음'을 가르쳐준 사람

눈을 기다린다..


내가?

운전 중 길이 미끄럽다며,

녹으면서 지저분하게 질퍽거린다며,

눈이라면 질색팔색하던 나다.




날은 계속 시린데 눈은 오지 않는다

벌써 몇 번은 오고도 남았을 시기인 것 같은데 코빼기도 안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청 자주 왔던 것 같은데..

근거도 없는 기억은 귀찮기만 했던 예전을 떠올린다.


...


'어...어어..눈이다!!!'


거실창 밖의 풍경이 몹시 낯설고 고요하다. 따뜻한 양손과 이마를 차가운 창에 이고 자세히 내려다 보니 아직 누군가 지나간 흔적도 없다.


마음이 분주하다.

베실베실 웃음이 샌다.


"아인아~!!"


영문을 모르는 작은 사람은 휘둥그레 쳐다보기만 한다.

분주한 엄마가 낯선 것인지 잠도 덜 깬 이른 아침의 이 상황이 낯선 것인지..


우선 최대한 꽁꽁 싸메어 보기로 한다.

내복은 그대로 입고 티도 하나 더 입어, 집업도 하나 걸치고 두꺼운 잠바에 선물받은 토끼모자까지. 완성!


한 손가락으로도 잡힐 것 같은 작은 손을 꼭 쥐고는 허리를 한껏 숙인다.


"밖에....눈이 왔대애~"


분주한 마음과는 반대로 최대한 말을 늘여가며 눈을 맞춰본다.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단 좋다고 따라나선.




하얀 세상을 처음 본, 세상에 나온지 일년이 조금 넘은 작은 사람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땅도 한 번 보고 나무도 한 번 보고 엄마도 한 번 본다.

긴장한 듯 꼭 쥔 두손은 펴질 줄 모르고 넘어질까 힘 준 다리는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간 듯 하다.


그걸 보는 나는 왜이리 웃음이 나는지..웃음이 나는데 왜 목은 메이고 코끝은 찡한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지겹도록 보던 눈이..실제로도 지겨웠던 그 눈이 마치 나도 처음 보는 것인 양 기쁘고 신기하고 설레었다..


너의 '처음'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이토록 설레고 마음이 터질 듯 벅차는 일이더라.

너를 만나고 나서 나에게도 세상 모든 게 처음이다. 너는 나에게 잊고 있던 '처음'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언젠가 어느 시기가 오면 너의 처음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하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 설레어하며 누려보련다.



너의 '처음'을 함께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럽다.


올 해도 나는 벌써부터 

질퍽하고 미끄럽고 지저분해질 게 뻔한 하얀 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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