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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Jan 28. 2022

블로그, 책의 시작.

온라인 역마살

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미 책이라는 꿈은 나 혼자 퉁쳐버렸기에 깊이 숨겨두어 나조차 찾기 어려웠다.





역마살이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하는 팔자'라고 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 '쉼'을 못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 런. 데.

나를 집에 꼭꼭 숨어있게 한 역병이 도래했다. 예전의 메르스나 사스 때와는 체감이 달랐다. 무엇보다 지키고 싶은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나 하나면 모를까 아이는 안되었다.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걱정에 문을 걸어 잠그고 꽁꽁 숨기로 했다. 곧 끝이 날 테니 나는 괜찮았다. 집 안에서도 충분히 다채롭게 계획적으로 놀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곧'이 곧이 아니었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집콕 생활은 희망을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리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소진했다. 루틴이고 계획이고 다 무너져버리고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급급한 나날이 반복됐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 무료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나는 빠른 속도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디로든 나가야 했다. 물리적으론 나갈 수 없으니 심리적으로나마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생기 넘치던 옛 사진을 보고 "우와"를 연발하는 아이의 등떠밈에 미친 짓을 강행했다.


블로그 시작.


"와 블로그 하는 사람들은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예전에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었다. 나는 결코 할 일이 없을 거란 확신이 가득했던 말. 그 대단한 일을 내가 하기로 했다.


처음 발을 들인 온라인 세상은 낯설었지만 신선했다. 나에게 꼭 필요했던 '새로운' 무언가가 분명했다. 보는 이도 듣는 이도 없었지만 혼자라도 떠들기 시작했다. 꽁꽁 가둬놨던 역마살을 온라인으로 해소했다.

살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며 남의 이야기들을 보러 여기저기 구경 다녔다. 이리저리 이 집 저 집 온데 군데 마음껏 쏘 다녔다.


이 사람은 책을 읽네..

이 사람은 주식을 하네..

이 사람은 육아 중이고..

이 사람은 사기꾼이다..

이 사람은 책을 쓰네..

어.. 어? 책을... 쓰네?


온라인 공간엔 책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한 번 책이 보이니 그 뒤로는 더 책 쓰는 사람들만 보였나 보다. 들여다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맘이 찌르르하기도 하고 붕 뜨기도 하고 쿵 떨어지기도 했다.


책을 보고 지은이를 좋아하게 되듯 블로그를 보고도 맘이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어찌 되었건 그 '사람'이 보이기 마련이니. 나 혼자 아는 사람인 양 내적 친밀감이 쌓여갔다. 혼자 응원하고 혼자 마음을 썼다.


이때까지도 책 쓰는 이들에 대한 동경, 딱 거기만큼이었다.

대리만족. 




꽁꽁 숨겨두고 수시로 뚜껑을 눌러 덮었던 상자에서 '꿈'이 슬쩍 고개를 빼꼼 기 시작했다.


'똑똑, 나 아직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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