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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 Feb 03. 2020

11회 총성 없는 전쟁 고3: 주먹다짐

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11회 -총성 없는 전쟁 고3: 주먹다짐-


  ‘베이징대! 청화대! 인민대! 중국 유학 3대 학교를 입학하라!!!!! ‘ 현재도 그렇지만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당시에도 소위 중국 유학 3대 학교라고 하는 저 3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고3 유학생들의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루어졌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3개 학교 중 하나에 들어가기를  항상 소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자 나는 엄마의 권유로 현재 학교보다 공부를 더 빡세게 시킨다는 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고3 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학교는 매우 신기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숙사 생활은 하지 않고 그 학교 고문이라고 하는 분이 운영하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오전과 오후에는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에는 그 집으로 가서 입시 준비를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 고문을 이모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3대 학교에 들어가려면 수능 같은 시험을 봐야 한다. 중국은 수능을 高考(까오카오)라고 하는데 유학생들에게는 유학생 전용 수능 시험을 만들어 유학생들끼리 전쟁을 한다.


  우리나라 언어영역에 해당하는 어문 시험은 중국의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이고, 수학과 영어도 문과 이과를 나누어 수준별로 시험을 봤다. 현재는 없어진 과목이지만  내가 시험을 볼 때는 역사도 시험과목에 있었다.


모두 다 중국어로 치러지는 시험이고 시험에서 1차로 통과가 되면 2차 면접시험이 있었다. 2차 면접에서도 30 퍼센 티의 학생들을 더 분별해서 탈락시켰다. 결국 시험 지원자의 소수만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즉 외국인이라고 해서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그런 입시 시스템이었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었지만 막상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니 공부하는 양 자체가 달라졌다. 이제까지 배운 중국의 문학작품과 시를 정리해야 했으며 작문도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중국의 복잡한 역사도 흐름을 파악하고 외워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수학과 영어도 문제였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작년에 3대 학교를 보낸 기록이 없어서 내가 수능을 볼 연도에는 ‘기필코 학생들을 보내리라 ‘하고 칼을 가는 상태였다. 그 당시 나를 포함해서 5명의 고3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다. 나와 친한 친구와 카자흐스탄 3명이었다.


  나는 전학 간  첫날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 , 신고식이었는지 중국에서 주먹다짐을 했었다.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던 전학 첫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려 가려고 교실에서 나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급식실 가는 길을 잘 몰라 방황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 복도에 서있으면 누군가 아는 척을 해주고 나를 데리고 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귀에 엠피스리를 꼽고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 나를 데려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복도 난간을 잡고 있던 나의 손목을 카자흐스탄 무리 중 한 명이 주먹으로 쳤다.


나: 아!!!


카자흐스탄인 1:???


나: 18...



  순간 너무 아픈 기분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국 욕을 알아 들었는지 나에게 중국어로 “뭐 18? 왜 나한테 욕해” 라며 날 쏘아 부쳤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선 나에게 왜 욕을 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이아이를 보자니 나는 순간적으로 욱 하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주위엔 나와 카자흐스탄 둘 뿐이었다. 내가 멱살을 잡으니 그 아이도 나의 멱살을 잡았고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점점 가까이 맞대면서 일촉 즉발의 주먹다짐의 위기를 맞았다. 솔직히 나는 이아이의 눈빛이 조금 무서워서 속으론 떨렸지만 나도 성격이 욱하는 사람이라 극도로 흥분된 상태여서 더 이상 자존심상 물러설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你到卫生间过来(니 따오 웨이 셩지엔 꿔라, 너 화장실로 따라와)”


“오냐”


   그리곤 나를 화장실로 부르는 그 아이...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갑자기 나를 화장실로 따라오라길래 한편으론 이아이가 나랑 정말 시원하게 한판 싸우고 싶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뭔가 계획적으로 첫 학기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날 불렀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눈이 돌아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아이를 뒤따라 화장실로 향했고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


  어??? 그래 몇 번 치고받고 하면 끝나겠지 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 화장실에는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2명이나 더 있었다. 마치 날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이게 뭐지…”


  3명이서 1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싸움이 끝난 후에야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진짜 큰일 났다 라는 생각밖에 안 했었다. 내가 싸움을 즐겨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 친구들의 덩치도 무척이나 거대했다.


  나는 키가 180인데 나에게 시비를 직접 걸은 아이는 175 정도로 기억이 난다. 나머지 두 명은 190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신장 대비로 보았을 때 싸움이 시작이 나면 나는 손도 못써보고 밀리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러 설 수 없었다. 이렇게 굴복하는 건 이미 자존심상 허락이 되지 않았고 기싸움식으로 나에게 싸움을 건 거 같다는 느낌에 여기서 오늘 만만하게 보이면 고3 내내 부닫힐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오늘 얻어터져서 얼굴이 고구마가 되더라도 나에게 직접 시비 건 놈은 용서할 수가 없어!!! 나는 그놈만 때려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오가는 찰나 그쪽에서 선빵이 날아왔고 나도 몸을 던져 그들과 육탄전을 했다.


  어느 순간 나의 몸은 변기 쪽에 처박혀 있었고 나는 재빨리 175짜리 놈을 찾아 소변기쪽으로 쳐 받아 버렸다. 이후 많이 얻어터졌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선생님이 화장실로 들어오셨고 내가 느끼기엔 길고도 길은 시간의 싸움은 종료가 났다.


  물론 내가 훨씬 더 많이 맞아 보였고 그들은 약간의 경미한 부상을 당한 듯했다. 그래도 내가 훨씬 더 많이 얻어터졌음에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건  그 175짜리도 목 주위에 상처가 대단했기 때문에 나름 흐뭇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아팠다.


  선생님은 우리를 교무실로 데리고 갔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으셨지만 나와 그들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저녁 , 학교가 끝이 나고 나는 홈스테이에서 주는 봉고차를 타고 홈스테이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자 학교의 고문이라고 불리던 홈스테이 이모가 나의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얻어맞은 것도 억울했고 내가 무슨 출세를 하겠다고 학교를 옮겨서 이런 수모를 당하나 싶었다. 난 난생처음 이런 일이 있는 거였기 때문에 너무나 속이 상해 있었다. 어딜 가나 리더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곤 했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나 했다. 내가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어서 그랬나 싶었고 그냥 모두 다 짜증이 났다.


다음날


  상처가 가득한 얼굴을 한 나와 목에 상처를 입은 175짜리 친구가 아침 조회 때 나란히 교실에 앉아 또 서로 째려보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근데 서로 얻어터져서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근데 나의 웃음소리가 웃겼었는지 그 아이도 따라 웃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화해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랑 같이 밥을 먹으러 갈려고 손을 친 거였는데 손에 힘 조절이 안돼서 그랬던 거였다. 그런데 나의 격한 반응에 당황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네가 너무 세게 때렸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기다렸던 애들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그 둘은 그냥 손을 씻었는데 우리가 들어오니 당연히 절친인 자기편을 들었던 거라고 했다.


  그렇게 주먹다짐의 상황이 종료가 되었고 그 뒤로 그 카자흐스탄 친구와 전혀 문제없어 지냈다


  난생처음 있었던 시비를 당하고 싸움난 기억, 난 그 이후로 누구와 주먹다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세상엔 치고받고 하는 싸움 말고도 많은 싸움이 존재했다.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다 보니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없다. 무언가를 경쟁할 때나 연인 사이끼리 사랑싸움을 할 때나 친구와 언쟁이 생길 때나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방어한다.


  어쩌면 이러한 방법들이 사람들 더 화나게 하고 미치게 할 때도 있는 거 같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가슴에 비수를 꼽는 말과 행동으로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그것이 육체던 마음이던 그냥 평화스러운 게 좋다.


  하지만 나는 무한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다. 살다 보면 남들과 사소한 언쟁이나 트러블이 생길 일들이 많다. 나는 이때마다 생각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겨먹어야 하나 혹은 져줘야 하나 아니면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 이해하며 지내야 하나?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그냥 상황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단순한 주먹다툼으로 끝나지 않는 이 사회는  어쩌면 주먹보다 아프고 강한 혀로 지배되고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  남을 배려하고 고운 말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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