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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 Feb 18. 2020

24회 10년의 시간

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24회 -10년의 시간-     


  2013년 6월 나는 귀국을 앞두었다. 이번엔 방학에 잠깐 들어가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을 아예 떠나는 것이다. 졸업논문을 제출했고 학교 도서관에도 업데이트가 됐다. 학교에선 졸업식 참여는 자유라고 했고 졸업장과 학사학위증서가 미리 나왔다.  

    

  졸업장과 학사학위증서를 가방에 챙겼고, 이제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다량의 졸업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뽑았다. 그동안 그렇게 가기 싫었던 학교도 이제 끝이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사진도 찍었다.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하지 않았던 이때가 되면 눈가가 촉촉해지고 서로들 좋은 기억만 남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엔 집주인이 전화가 왔다. 나에게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다. 집주인은 나와의 마지막 집 계약을 정리하러 온 것이다. 나는 룸메한테 부탁해서 집주인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나도 집안으로 들어간다.    

 

  나와 룸메이트는 집주인이 사인한 종이에 우리의 이름 석자도 적었고 보증금도 받았다. 그리곤 악수를 청하는 집주인 아주머니, 일 년 반 동안 무사히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룸메 동생은 이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 나는 집 문제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짐을 챙겼다.      


  그동안 큰 캐리어로 한가득 짐을 담았던 그 정도가 아니다. 이민가방으로 꽉꽉 두 개를 채워도 짐이 나왔다. 10년 동안 가지고 다녔던 짐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 룸메가 옆에 와서 도와준다. 고등학교 때부터 '형형' 거리면서 잘 따랐던 이 녀석과도 이제 중국에선 마지막이다.   

   

  아쉬운 기분이다. 뭔가 중국을 떠나려니 마음이 참 이상하다. 그냥 방학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는 거 같은데 이제 나는 중국에 더 이상 있을 명분이 없고 , 여권을 보니 유학비자의 기간도 끝이 보인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말 한마디 안 통해서 울분에 찾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그때 그 울분마저 추억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베이징으로 올라와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농구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고3 시절, 대학시절 그 치열했던 순간도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    


 슬프다. 현재를 추억으로 만든다는 게

 아쉽다. 지금이 계속되지 못한다는 게

 그립다. 오늘이 오늘만 이라는 게


그래도 내가 웃을수 있는건 나에겐 왠지 모를 미래의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의 생활이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별다른 기억이 없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기대가 된다. 어떻게 보면 나는 항상 외국인의 마인드로 한국을 바라보는 거 같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켜본 한국의 생활을 보며 나 나름대로 꿈꾸는 한국의 라이프가 있다. 한강, 치맥, 해운대 바다, 이 장소에 왜 꽂혔는지 모르지만 한국 라이프를 생각하면 이 장소에서의 로맨틱한 상상을 하고는 한다. 그리곤 드라마 속 유학을 하고 당당하게 귀국하여 또 다른 행복을 찾는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다. 또 꿈꿔왔던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도 한국에서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더 크다.         

  

  아쉬움반, 기대 반 그렇게 나는 중국을 떠난다. 공항으로 가는 날... 친구들의 배웅을 받았다. 그동안 고마웠고 또 고마웠다. 그들과 추억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자는 마음으로 택시에 올랐고 그렇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과연 나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한국 라이프를 잘 즐겼을까?          


6개월 후          


우울하다. 우울하다. 심각하게 우울하다. 나는 토익학원에서 나오는 중이다. 몇 개월 후에 있을 대학원 시험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찬란할 것 같고 로맨틱할 것 같았던 한국에서의 라이프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없어진 지 오래다. 배우를 꿈꿨던 나는 아는 분이 소개해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드라마 피디와 미팅을 하고 나서 꿈을 접었다. 그들은 내가 소질도 없고 외모도 어중간하다고 했다. 내가 중국에서 활동했던 건 아무런 필요에도 없는 이력이라고 못을 박았다.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한국에 오자마자  갈피를 잃어버렸다.       


  나는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어 관련 일을 바로 떠올렸다. 그리곤 무모하게 나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을 꿈궜다. 그래서 바로  대학원을 준비했다.  

   

  어쩌면 배우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인물을 연기하거나 다른 인물이 되어 관중들에게 희노애락을 주고 싶다던 나의 다짐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난 어쩌면 아니 분명히 배우라는 직업이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날 연예 기획사 관계자와 드라마 피디는 내가 스타가 되기 힘들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장담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내가 이 직업에 어떠한 신념이 있었으면 다 무시하고 이 길을 갔을 테지만 , 나는 저울질했기 때문이다. 자존심도 충돌했다. 그들의 말에 나도 아쉬울 거 없어 라며 건방을 떨었다. 실은 건방이기보단 내가 상처 받기 싫어서 혹은 실망감을 가질까 봐 나도 모르게 나오는 방어적인 태도였다. 그리곤 영악하게 두뇌회전을 한다. ‘그래 나는 스포트라이트가 좋은 것이지 배우가 좋은 게 아냐 , 나는 어떤 거든 빛만 찾으면 돼’,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을 가지면 내가 행복해지겠지? 그동안 고생한걸 다 보상받을 수 있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상상을 하며 나는 꿈을 또 한 번 전환한다. 아무스럽지 않게, 속에서 더 도전하고 부딪쳐봐 라고 소리치지만, 나는 마음에서 귀로 전해지는 어떠한 몸속의 기관을 닫아버린다. 나는 여기서 빛을 보지 못하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무기로 빛을 보자고 스스로 위로하고, 그렇게 다른 빛을 나는 구하려 한다.

     

  또 헤밀 까 봐, 또 상처가 될까 봐, 빨리 어떠한 명분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그렇게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체 , 겉근육에 치중하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또 한 번 바꾼다.     


   또 다른 문제도 직면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나는 고작 며칠 너무 즐거웠긴 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도 좋아 고, 한국음식들도 너무 맛있었다. 쾌적한 영화관도 좋았고 한강도 가보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족과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가족이 싫거나 화목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원래 혼자 살던 사람이다 보니 , 부 닫히는 일이 많았다. 밥 먹는 거, 일어나는 거, 생활하는 거 일일이 엄마와 부 닫혔다. 나는 엄마가 이해가지 않는다. 엄마는 나보고 혼자 살다와서 개차반이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렇게 10년을 큰 문제없이 중국에서 공부하고 왔다. 우리의 의견 차이는 좁혀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니 참아야 한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지만 내가 당장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니 또 수그린다. 어쩔 수 없다. 싸가지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가족끼리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우리 집 분위기는 화목하면서도 일정한 차가움이 존재한다.     


  이러한 답답함을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 카카오톡으로 유학했던 친구들과 혹은 중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다. 큰일이다. 같이 유학하던 친한 한국인 친구들은 예전처럼 한동네에서 사는 게 아니라 각 지방 각지에 있어서 잘 만나기 어렵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서울에 사는 친구인데 매번 따분한 소리를 하러 서울까지 가기도 힘들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시원한 치맥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럴 친구가 없다. 맛있걸 먹으러 갈 친구도 없다.


   한국에서 친구를 사귈만한 환경도 아니다. 어디에 소속되어야 사람들을 사귀기 쉬운데 나는 지금 소속이 없다. 이렇게 소속감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동안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소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소속이 없다. 이 때문에 밀려오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 거 같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나의 한국생활은 그렇게 상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나는 중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고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소속감이 없어 너무 힘들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주변에 친구들이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게 핑계일 걸까?... 내가 한국생활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많은 이유인 걸까? 모르겠다. 실패자가 될 것 같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런 향수병이 올지 몰랐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도 그랬는데 어떻게 한국에 와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심이 갔다. 나는 한국인인가 아님 중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맞는 것일까?     


2013년 후반기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희망찬 기대를 한 것 품고 왔던 한국에서의 라이프는 현실에는 없었다. 중국보다 빡빡하고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은 많이 빠르고 바쁜 사회였다. 혼자 이겨내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던 거 같다.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한국에 정을 둘 수 있을까? 2013년 나에게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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