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이번 에피소드도 규랑 있었던 일이다. 규와는 대학교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때까지 3학기를 같이 살았다. 베이징 육도구 지역에 있는 한 아파트 1층에서 지냈다. 1 거실 2방이 있는 구조였고 각자 방을 쓰면서 나름 편한 나날들을 보냈다.
나와 규는 생활 패턴이 달랐는데 규는 아침에 활동하는 인간이라면 나는 저녁에 활동하는 올빼미족이었다. 그래서 집안에서 많이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서 그런지 아주 편한 사이이고 내가 아끼는 동생이다.
근데 우리가 살고 있던 집에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 샤워실 안에 샤워부스의 유리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툭 하고 조금 강하게 치면 부러질 정도로 약해 보여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며칠을 기다리라고 말만 했고 고쳐주지 않았다. 중국인 특유의 느릿느릿한 습성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른들이 중국인들을 말할 때 만만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중국어 '慢慢'(느리다)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저녁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머리도 감고 이도 닦고 바디 클렌저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뭔가 뒤통수가 서늘한 기분이 들어 돌아보니 샤워부스 유리가 화장실 변기 쪽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아아아아아 안돼”
순간 내가 막을 겨를도 없이 화장장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나는 순간 나의 온몸에 유리가 박히겠구나 하며 두 눈을 꽉 감았다.
오 마이 갓 하나 둘 셋,
유리가 와장창 깨지고 난 뒤 나는 감고 있던 두 눈을 떴고 벌거벗은 내 온몸을 둘러보았다. 화장실 변기 안에 유리가 산처럼 쌓여 에베레스트 형상을 한 것을 빼고는 다행스럽게도 내 몸에는 유리 파편이 하나도 튀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늘이 날 도왔다.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화장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고. 자고 있는 규를 깨워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 후 벌어졌다.
집주인에게 유리가 깨졌다며 다시 한번 요청했지만 수리기사가 늦는다고 했다면서 며칠을 더미루웠다. 정말 짜증이 나고 화가 났지만 아쉬운 대로 파출부 아주머니를 불러 깨진 유리파편을 정리하고 일상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고 있는데 순간 나의 오른쪽 팔이 뭔가에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샤워부스를 다시 보니 덜 치워진 유리파편이 날카롭게 나사 부분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피도 나지 않고 얼마 다치지 않은거 같았고 물에 닿아도 따갑지 않아서 다시 샤워를 강행했다.
길들여질 수가 없어 나를 절대 don't touch, touch, rush it, rush it
멀리서 봐도 너를 일으키는 내 눈 빛이, 빛이, guilty, guilty
목마르는 네 얼굴엔 땀방울이 맺히고
날카로운 내 손끝엔 네 살점이 맺히고
한창 그때 유행하던 브라운아이즈 걸즈의 노래를 부르면서 온몸을 흔들며 샤워를 하는 중 , 머리에 샴푸칠 을 하고 물로 씻는 순간 뭔가 빨간색 액체와 함께 나의 머리위로 우스스 떨어졌다. 헉 이게 뭐지? 순간 나는 놀래서 물을 껐고 다시 내 팔을 보니 벌어질 때로 벌어진 팔 옆 꿈치에서 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정말 방금 불렀던 노래 가사처럼 ‘목마르는 네 얼굴엔 땀방울이 맺히고, 날카로운 내 손끝엔 네 살점이 맺히고 ‘ 있었다.
순간 피가 너무 났기 때문에 나는 놀랐고 병원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나왔다. 그리곤 가까운 응급실로 가려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 순간 문 따는 소리가 들렸고 규 가 집에 들아왔다.
규:형!!!!
피가 철철 나는 나를 보더니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고 나를 자신의 자토바이(스쿠터보다 속력이 덜 나가는 오토바이의 종류)로 태우는 규, 그래도 좋은 병원에 가야 겠다며 베이징대학교 제3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나는 규의 자토바이 뒤에 타고 병원 앞에서 내렸고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 규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나:팔이 유리에 찔려서 왔어요
간호사: 수속하셨나요?
나: 아니요. 치료받을 때 제 친구가 대신하면 안 되나요?
간호사:안돼요 수속받으시고 오세요 본인이 직접!!!
피가 철철 흐르는 내 팔을 보고도 아무스럽지 않다는 듯 수속을 하고 치료를 받으라는 진정한 철의 여인 베이징대 제3병원 응급실 간호사...
나는 이해가 안 갔지만 수속을 해야 한다길래 수속을 하러 규와 함께 접수처에 갔다. 수속을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는데 내가 외국인이니 여권 검사부터 시작해서 20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곤 나에게 다른 수속실로 가서 응급실 진료카드를 만들라는 직원...
정말 이러다가 급했으면 나는 죽었겠다 싶었다. 친구가 대리로 하면 안 된냐며 재차 물었지만 피가 철철 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듯 무표정으로 대하는 또 다른 철의 인간 병원 관계자가 있었다.
결국 40분 정도 시간이 흘러 나는 치료실로 들어갔고 이제 치료를 받겠구나 하는 안도와 너무 오래 기다려서 상처가 덧나면 어쩌나 생각했다. 정말이지 응급상황이었으면 수속받다 급성으로 죽어 죽은 상태로 응급실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생각하면 너무 약한 것에 불과했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젊음 의사가 오더니 내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는 나는 병원에서 이제까지 의사가 하는 말 중에 가장 이상한 말을 들었다
의사:꿰매실 거예요?
나:네???? 그걸 제가 판단하나요?
의사:(귀찮은 듯):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 이거 꼬매야 하나요?
의사: 꿰매면 빨리나고 안 꿰매면 늦게나요
나:그럼 안 꿰매어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의사: 다시 말씀드리지만 꿰매면 빨리 났고 안 꿰매면 늦게나요
나:그럼 안 꿰매어도 되는 상처 냐구요
의사: 본인이 판단하시죠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이걸 환자한테 판단하라니... 내가 미용목적으로 성형외과에 온 것도 아닌데 뭘 내가 판단하냐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꼬매야 되는 상처인지 아닌 상처인지 나한테 판단하라고 하니... 내가 판단할 수 있으면 수속을 40분이나 하고 여기에 있겠느냐 말이다.
애매모호한 중국 특유의 화법이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서 또 나왔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의사를 보고는 결국 내가 판단해야 했다. ‘그래 내 몸이니까 내가 판단해야지 저 사람이 참 의료인이야 “
나는 중국의 의료 기술이 좋지 않으니 괜히 이상하게 꿰매었다가 흉터가 남느니 늦게 나더라도 꿰매지 말자 라고 결론을 내렸고 , 처치만 를 받고 나왔다. 그리고 규랑 같이 나가려는 찰나 의사가 하는 말
의사: 시간 되면 주사 한 대 맞고 가요
그럼 저 소리는 결국 안 맞아도 되는 주사인가??? 내 머릿속을 스친 의사의 말에 나는 안 맞아도 되는가 보다고 병원에서 나와 규와 함께 자토바이에 올랐다. 그리곤 한창 집으로 달려 집에 도착했는데 병원 진찰서에 보니 내가 맞아야 하는 주사는 파상풍 주사였던 것이다.
하... 그런 중요한 주사를 시간 될 때 맞으라고 하는 의사... 그 의사의 말을 번역해보면 24시간 안에 맞으면 상관없으니 시간 있으면 지금 맞으려면 맞고 아니면 나중에 24시간 안에 시간을 내어 맞으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결국 다시 규와 병원으로 향했다.
만일 내가 그날 찢어진 상처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이었다며면 아마 죽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규와 만나 그 상황을 이야기하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등골이 오싹하다.
해외에서는 아프지 않은 게 제일 중요하다. 의료보험도 안돼서 엄청나게 가격도 비싸고 서럽다. 집으로 돌아와 집주인한테 나의 붕대 감은 상처를 보여주며 당장 샤워부스를 고쳐 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기억이 있다. 몰상식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날 나의 고생을 이해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우리 아프지 말아요. 돈, 사랑 , 명예 다 건강이 허락해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