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엔 Feb 12. 2020

20회 덴마크 다이어트의 추억

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20회 -덴마크 다이어트의 추억-     


  나는 몸무게 변동이 아주 큰 체질이다. 일명 고무줄 몸무게라고도 한다, 살이 잘 찌기도 하고 마음먹고 잘 빼기도 한다. 그래서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항상 해서 그런지 20대 중후반 까지만 해도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 현재는 물론 그렇지 못하지만 ^^ 내가 대학교 3학년 시절 덴마크 다이어트가 한창 유행했었는데 나 역시도 그 다이어트를 해보았다     


  인터넷 검색 창에 쳐보니 식단들이 나왔고 나는 곧바로 마트로 향했다. 나는 샐러리를 안 먹는 편이어서 오이로 대체를 했다.     

 

  나는 다이어트를 할 때 약간 과하게 하는 편이다. 식단을 조절할 때 과하게 조절하는 편인데, 덴마크 다이어트할 때도 역시 조금만 먹으면 좋은지 알고 식단의 양을 줄여버렸다. 식빵 한 개를 반개로 줄이고 닭가슴살 한 덩이를 반 덩이로 줄였다. 식단 자체가 살이 찌지 않는 식단이기 때문에 괜히 줄일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조금 먹는게 능사인 줄만 알았다.     


  나는 다이어트를 많이 해봐서 배고픔에 익숙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덴마크 다이어트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덴마크 다이어트는 정해준 식단대로 먹으면 몸 안에서 화학 작용을 해서 지방을 태워주는 다이어트 법이라는데 , 덴마크 다이어트가 내 몸에서 화학작용이 엄청나게 이루어졌는지 참기 힘들었고 하루하루 배가 너무 고팠다. 2주일을 참아야 했는데 4일이 지나니 참기 어려웠다.   

   

  매일 밤마다 고비가 찾아왔다. 치킨을 시켜야 하나……. 양꼬치를 먹어야 하나, 아님 마라탕이라도... 수많은 음식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지만, 식단에  들인 돈이 아쉬워서 꾹 참아 냈다.

    

  나랑 대학교 3학년 2학기부터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나랑 고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한국인 동생이다. 그 동생은 규라고 하겠다. 규는 계속 나에게 안색이 안 좋다면서 그만 할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그말에 굴하지 않고 덴마크 다이어트를 계속 강행했다. 역시나 일주일이 지나니 더욱더 힘들어졌고 배고픔이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규는 여전히 나에게 계속 그만 하기를 바랐지만 나머지 일주일만 버티면 성공한다는 신념에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4일 후     


  덴마크 다이어트 2주 차 4일, 이제 3일만 참으면 된다.


  그런데 그날 아침부터 머리가 핑핑 돌았고 힘들었다. 정말 툭하면 쓰러질 것 같았다. 태어나서 감기 한번 잘 안 걸 리고 튼튼한 내가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래도 거울을 보니 얼굴이 홀쭉해져서 며칠만 참아야지 했다. 그리곤 학교에 가려고 샤워를 했고 힘겹게 옷을 입었다.  집 문을 나서는 찰나 순간 눈앞에 뭐가 훅하고 지나가더니 나는 기억을 잃었다.  

   

  그리곤 잠시 뒤  귀에서 규의 목소리가 뭐라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규: 형!!!!!!! 왜 그래     


  나는 눈을 뜰 수는 없었지만 귀에서 소리는 들렸고 규의 자토바이(스쿠터보다 속력이 덜 나가는 전동 오토바이)위에 줄로 꽁꽁 묵껴버린 나는 정신이 혼미해진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순간 속으로는 룸에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그 동생에게 고마워하고 있었고 병원에 실려 간다는 안도감에 아예 정신을 놓았던 거 같다.             

  

차익~~~~~~~~         


 

  싸늘하다……. 무언가 불에 지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병원에서 날꺠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가 같다. 무언가에 이끌려 눈을 뜨려는 찰나... 탁자 같은데 엎퍼져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고 이곳은 병원 응급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내 코에 나는 살이 타는 냄새…….     


“다 나왔습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응급실인지 알았던 내 앞에는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고 순두부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나: 이게 모야?? 병원에 간 거 아니야     


규: 형 이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룸메 동생이 나를 한국식당 고기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규의 판단으로는 고기가 링거이고 순두부찌개가 약이며 고기 익는 냄새가 휴식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웃겼던 것은 내 두 눈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아하니 난 더 이상 덴마크고 뭐고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엎퍼져있는 나의 몸을 힘차게 바로 하고 고기를 연속으로 먹어댔고, 그렇게 너무 커다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공기밥도 두 그릇이나 리필해서 먹었던 거 같다.          


  요즘도 그 동생을 만나면 아직도 만나서 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몇 번을 말해서 지겨울 때가 됐지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기고 재밌다. 만일 그때 이 룸메 동생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쓰러짐을 삼겹살로 살려준 규에게 감사하며 같이 지내는 1년 반 동안 너무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고기는 진리이며 네 삶에 절대 전능하시도다. '    

이전 20화 19회 가족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