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대학교 시절 한창 배우의 꿈을 꿈꾸며 일상들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날 뜬금없이 배우라는 직업이 하고 싶어 진거는 아니다. 예전부터 연기하는 걸 좋아했었고 배우를 꿈꿀 수 있는 기회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는 때가 있다며 항상 만류하셨기 때문에 감히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랑 같이 스키장에서 놀던 동생이 대형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아이돌 멤버로 데뷔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이후 뭔가 내 안에 억눌러져 있던 배우의 꿈이 자극받기 시작한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지내자고 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교 영상도 찍고 연극단체도 들어가 지냈다.
하루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끝내고 학교로 오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이어폰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잘 듣지 못했지만 마치 제스처가 길을 물어보는 사람 같아서 '몰라요 몰라요'만 외치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다 다를 무렵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다시 한번 나의 등 뒤에서 누군가 날 잡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보았던 젊은 남녀였다. 나는 두 번째였기 때문에 이어폰을 빼고 그들을 쳐다보았고 여자분이 나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베이징 00 엔터테인먼트 000 직원
길을 물어보는지 알았던 그들은 엔터테인먼트 직원이었고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길거리 캐스팅이 되었는지 알았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배우라는 직업에 별 관심이 없들때라 감흥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있을 때 이러한 기회가 나한테 다가오다니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됐는데, 이들이 혹시 사기꾼이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가서 명함 안에 써진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도 꽤 많은 모델과 배우가 속해있는 회사였고 베이징 구어마오(国贸) 라는 상업단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명함을 준 그 여자분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곤 일주일 후에 찾아간다고 했다. 그리곤 일주일 동안 극강의 체중관리에 들어갔다. 그땐 별로 살도 찌지 않아서 음식만 조절해서 먹으면 됐다.
일주일 후
나는 택시를 타고 중국 구어마오 지역의 그 회사로 들어갔고 나에게 명함을 준 여자분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정문으로 배웅을 나와서 긴장감을 좀 낮출 수 있었다. 나에게 명함을 준 사람은 이름을 팅팅으로 간략하게 불렀는데 동글동글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그녀는 아주 친절했다.
팅팅은 간단한 설문지 비슷한 거를 나에게 작성하게 했고 나를 데리고 주임님을 만나야 한다며 주임실로 데려갔다.
회사의 주임님은 마른 체격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분이었는데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멀리 와서 공부하다가 이런 기화가 생겼는데 걱정되지 않아요? 우리가 사기 친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솔직히 그런 생각도 하면서 여기에 왔어요”
“그렇지 중국에서 이런 걸로 사기 친다는 일이 많았다고 들었을 테니까 날 믿어요? 못 믿죠?”
“......”
“당연히 못 믿겠죠 , 내가 제안 하나 할게요, 내가 날 믿을 수 있게 먼저 오디션 기회를 보도록 지원해줄게요. 그래서 오디션에서 합격하면 그때 계약을 하건 뭘 하건 합시다.
“네 그럼 좋죠”
상당히 샤프한 말솜씨와 두뇌회전을 하시는 주임님은 나에게 좋은 제안을 해주셨고 나의 오디션을 지원해주신다고 했다. 또 오디션 내내 이동하는 차량과 관리인 겸 매니저로 팅팅을 나에게 배치해주셨다.
그 후로 나는 팅팅과 함께 음료수 광고, 말없는 중국 영화 단역, 테니스채 광고 등등 많은 오디션을 보러 다니게 됐다. 주로 나는 화보나 잡지 광고 같은 부류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왜냐하면 나는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팅팅의 주도 아래 오디션 일정과 기본적인 케어가 시작됐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매번 탈락했다. 내가 이쪽에 전문적인 경험이 없기도 했고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것도 아녔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매번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팅팅은 나에게 자신이 다른 전략을 짜 오겠다며 회사로 향했고 나는 오디션을 맞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팅팅은 나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회사에서 회의 끝에 새로운 콘셉트를 가져왔다며 이야기해준 것이다. 그 콘셉트는 바로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마음껏 티 내어 중국어를 말을 하고 일부로 어눌하고 잘 못하는 듯 보여 순수하고 귀엽게 보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게 나의 이미지와 맞을까 생각했다. 나는 이 전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하면 좋겠지 하고 이 전략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팅팅의 연락으로 또 다른 오디션을 보게 됐다. 이번에는 어떤 오락 프로그램이었는데 한국의 러브 스위치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남자가 말없이 트레이에서 지나가면 여자패널들이 버튼을 눌러서 선택하는 그런 식이였다. 팅팅은 나에게 좋은 기회라며 말해줬고 회사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프로그램의 오디션은 베이징의 싼리툰의 한 호텔에서 진행되었는데 나도 역시 호텔로 향해 수많은 오디션 참가자들과 함께 줄을 섰다. 그런던 그때 팅팅이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신호를 주웠다
“팅팅 뭔데 왜 그래요”
“아 주임님이 거기 피디랑 말해서 단독으로 오디션 보게 해 줬어요. 일단 밥 먹고 다 끝나면 피디들 모여있는 룸으로 가면 돼요”
“오 잘되겠다!”
주임님이 따로 말해놓았다는 팅팅의 말에 이번엔 뭔가 꼭 될 것 같았다. 나는 팅팅이 말해준 전략을 잘 곱씹으며 어리숙하고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인척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그리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팅팅과 함께 피디들이 있다는 룸 앞에 섰다. 팅팅은 나에게 잘하고 오라며 손을 흔들어 줬고 나는 노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몇 명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대빵으로 보이는 분이 나에게 앉으리고 말했고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아 제 이상형은...”
질문에 대답하려고 순간 팅팅이 알려준 어리숙해 보이기 전략이 생각났고 나는 잘 못 알아듣는 척해야 했다. 그리곤 입을 닫아 버렸다.
“방송에 나오면 선택받지 못할 수 있는데 괜찮아요?”
“............... 네?....”
“제말 알아듣는 거예요?
“.................... 몰라요”
나는 팅팅이 시키는 데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순간 마음속으로 이래나 되나 싶었지만 팅팅이 그렇게 하라고 했고 회사에서 회의 끝에 짜줬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
연이은 질문에도 나는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서류를 ''꽝'하고 내리치 더니 나에게 나가라고 하는 방송 관계자... 난 영문도 모르도 그렇게 쫒겼났다.
방 밖에서 날 기다리던 팅팅은 잘하고 왔냐고 물었고 나는 안에서 있었던 일을 팅팅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팅팅은 갑자기 표정이 일 그러 지더니 나랑 대화하다 말고 룸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몇 분 후에 고개 숙인 표정으로 나왔다.
“왜 그래요 팅팅”
“이번에도 안될 것 같아요”
“왜요”
“그 콘셉트를 방송 출연해서 하셔야지 오디션 볼 때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다고 하면 저 사람들이 어떻게 믿고 출연시켜요”
“ 아 나는 그렇게 하래서...”
“하... 다음 기회에...”
그렇게 1년을 그 회사에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이리저리 팅팅과 움직였지만 오디션에 통과하지 못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기회를 내가 잘못 이해해서 내가 차 버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 후 나는 대학교를 졸업해서 한국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회사에서도 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에 가면 배우로서 더 큰길이 있다고 자부했다. 더 이상 중국에서 미련도 없었다.
중국에서 특별하게 지낸 1년 동안의 엔터테인먼트 생활...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내가 꿈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는 기억을 남겨줬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이 꿈에 대해 좌절하고 포기할 때 더 이상 미련두지 않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당시엔 꿈이 있었다. 원대했고 별이 되고 싶었다. 현재 나는 꿈이 있을까??? 물론 되고 싶은 직업이야 있겠지만 그때처럼 순수히 꿈을 좇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걸 해야 성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택해서 박사과정에 왔다. 나는 요리하는걸 좋아해서 솔직히 조금한 식당을 차려서 소소하게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친구들과 함께...
하지만 주위의 기대와 그동안 투자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는 야망이 나를 욕심내게 했고 여기까지 왔다.
여러분들은 어떤 길에 놓여 있으세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나요?혹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겠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이런 질문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바쁜 삶에 한가운데 서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