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저는 운동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입시에 필요하지 않은 예체능 과목’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달리기는 늘 하위권이었고, 공 던지기는 힘없이 땅을 굴렀습니다. 160cm라는 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던 저는 공부로만 승부를 보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체력적인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짜증이 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드는 것이 결국은 정신력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체력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필요한 만큼만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의학을 공부하며 환자의 몸을 만날수록, 몸을 모른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경락을 외우고 처방을 익혀도, 실제 몸이 어디서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지, 손끝의 감각만으로는 모자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몸을 해부학의 교과서로 삼기로 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숨이 찼습니다. 1km만 뛰어도 횡격막이 불타는 듯했고, 장요근의 뻣뻣함은 허리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침치료로 흉곽의 긴장을 풀고, 발의 아치를 살리기 위한 작은 운동을 더하자 호흡이 달라졌습니다. 기혈(氣血) 운행이라는 말이 뼈대 없는 관념이 아니라, 호흡-순환-보행의 리듬으로 제 안에서 살아 움직였습니다. 저는 육체가 전달하는 페이스를 읽는 법을 배웠고, 실제 거울을 보며, 수분 섭취와 전해질 밸런스를 조절했습니다. 책에서 배운 언어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비로소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보디빌딩은 몸으로 이해하는 교과서였습니다. 무게를 올릴수록 저는 ‘힘’이 아니라 ‘경로’를 느끼려 했습니다. 광배근이 당기는 방향, 상완이두근의 길이-장력, 흉추의 미세한 신전. 한 번은 견갑 상방회전이 막히며 어깨 앞쪽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저는 제 몸에서 배운 것을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견갑 하강·후인의 패턴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안내하고, 견봉하 공간의 과민반응을 낮추기 위해 전침과 온열을 병행했습니다. 며칠 뒤 환자는 “아, 팔이 위로 가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운동과 한의학이 서로의 언어를 번역해준 순간이었습니다.
마라톤은 제게 ‘한 번의 승부’가 아니라 ‘수천 번의 선택’이었습니다. 레이스 초반의 과열을 막기 위해 저는 바람을 이기는 정진(精進) 대신, 호흡의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절제(節制)를 택했습니다. 달릴 때 필요한 건 무릎을 둘러싼 근육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는 제 호흡을 조절하는 폐장이었습니다.
30km의 벽을 넘을 때는 비위(脾胃)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급 전략을 미리 설계했습니다. 위가 차갑고 무거워지지 않게, 물과 소량 탄수화물을 쪼개 먹고, 장요근·둔근의 리듬을 깨지 않도록 보폭을 미세 조정했습니다. 그 날 저는 기록보다 자세를 지켰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 제 머릿속을 스친 말은 “몸은 단순한 글자로 이루어진 진단서가 아니라 생생한 장면이 그려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도침치료를 처음 임상에 도입했을 때도, 운동이 제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한 환자는 데드리프트 이후 햄스트링 근막이 ‘잡아당기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촉진을 하자 좌골 부착부 근막과 외측 라인의 활주가 뻑뻑했습니다. 저는 유착의 미세한 장벽을 도침으로 풀고, 72시간의 보호-가벼운 가동성 회복-편심 강화 순으로 로드맵을 짰습니다. 환자는 “다음날 통증의 성질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통증이 줄었다’가 아니라 ‘움직임이 미끄러워졌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도침은 통증의 볼륨을 낮추는 스위치이자, 재활의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유착을 풀고, 관절의 길을 닦아주면, 그다음은 운동이 말을 잇습니다.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움직일지가 치료의 절반임을 늘 상기합니다.
PDRN 약침을 사용할 때도 원리는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회복 환경의 조율자’로 이해합니다.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의 기적이 아니라, 계획된 훈련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통증 관리와 수면입니다. 고관절의 야간통이 심한 러너에게 소용량 다점 주입을 시행한 뒤, 수면 질이 회복되자 케이던스와 보행 패턴 교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약침은 목표가 아니라, 운동이 제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다리입니다. 통증의 파고를 낮춰주면, 선수는 자신의 리듬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침·호흡·수면·영양이라는 다른 네 개의 현과 함께, 오케스트라처럼 울립니다.
보디빌딩 운동은 제 몸의 결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키는 작지만, 저는 ‘라인’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라인은 근육의 크기만이 아니라, 관절의 정렬과 호흡의 깊이, 걸음의 리듬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운동을 통해 제 삶의 좌표가 분명해졌습니다. 한의학은 전통의 언어로, 스포츠는 과학의 언어로 몸을 설명합니다. 저는 두 언어를 통역하는 통역사이자, 때로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환자에게 운동을 권하면서도 “지시”가 아니라 “대화”를 시도합니다. 몸이 싫어하는 강도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도록, 통증 0–3/10의 범위에서 호흡과 보폭을 맞추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도침으로 길을 열고, PDRN 약침으로 노이즈를 낮춘 뒤, 재활운동으로 패턴을 다시 새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날의 몸이 대답해주는가”입니다. 다음날 반등 통증이 없고, 밤에 잠이 깊어지고, 일상에서 자세가 오래 유지된다면, 치료는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운동은 제게 기적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일 조금씩 더 듣는 귀를 주었습니다. 경혈의 미세한 차이, 힘줄이 지나가는 길의 거칠기,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 그 모든 것이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작은 키는 제 한계가 아니었습니다. 한 걸음, 한 호흡, 한 세트가 쌓여 저를 다른 의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체육관에서도, 트랙에서도, 진료실에서도 같은 언어로 말합니다. 몸은 변할 수 있고,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무게를 들고, 트랙을 뛰고, 침을 놓습니다. 운동과 한의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저는 늘 더 좋은 치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