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8월이 지나면, 가을
일요일 점심을 먹고, 더운 날씨 탓에 거실바닥에 널브러져 해가 넘아가는 오후까지 잠을 잤다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어디든 잠깐 나가기라도 했는데
이번 여름 내내 더위를 먹고, 더운 날을 버티던 나는 머리카락이 뒹구는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세탁기 탈수를 기다리며 잠깐 누워있으려고 했는데, 눈떠보니 반나절이 지났다
내가 잠든 사이, 핸드폰만 집어 들고 나를 따라 누워있는
애들한테도 미안했고, 집안에 널린 집안일을 보니 나오는 건 한숨
선풍기도 켜지 않고 바닥에 누웠다 일어나니, 목을 타고 땀이 흘르고 몸이 쳐져서 정신을 차리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2년 전 이사 온 학교 앞 빌라,
여름엔 덥고 습하고, 겨울은 춥고 환기가 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했다
딸은 이사를 오고 비염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날마다 코피가 툭하면 터졌는데
코피가 한번 나기 시작하면, 떨어지는 코피를 막는 게 아니라 봉지를 대고 멈춰질 때까지
피를 받았다
그렇게 피를 흘리다 애가 잘못될 것 같아 응급실을 뱅뱅 돌았지만, 의사도 없고 치료 장비도 없다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깟으로 코피가 멈췄고 예하는 하루 종일 어지러움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늘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런 우리 집..
그래도 학교가 가까워 애들이 정말 좋아했다
아들은 걸어서 큰 걸음으로 30보, 딸은 걸어서 5분 안에 학교에 도착하는
교육형 주택(?)이라고 추켜세웠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날이면 조급함보다는 몇 분 안에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시간을 재보자고 내기를 하곤 했다
나도, 일하다 늦는 날이면, 겨울이고 여름이고 애들은 몇 시간 동안 컴컴해진 운동장에서 나를 기다렸었는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올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난 일요일 오후.
다 빨아진, 애들 옷을 들고 옥상을 올랐는데,
아침에 교회 가기 전 옥상에 널어놓은 수건은 다 말라서 바스락거렸다
볕을 담은 수건...
볕을 담은 양말..
이사 온 이 빌라 옥상에는 집집마다 쓸 수 있는 빨랫줄이 있었다
한동안 가구마다 있는 빨랫줄인 줄 모르고 302호 아저씨 빨랫줄에 한참 널었던 일이 있었다
아저씨는 말도 못 하고 한참 속앓이를 하시다, 나에게 가가호호 빨랫줄이 있다는 걸 알려주시고 그날, 우리 집 빨랫줄을을 새로 붙들어 매어 주셨다
옥상에 생긴, 자연 건조기
애들 옷을 가지런히 널고 돌아서면, 이젠 사춘기라 검은 옷들뿐이어서 나는 늘
옥상을 까마귀 세탁소라고 이름을 지었다
늦은 밤 건하가 까마귀 세탁소를 잊은 날이면 옥상에 올라 늦은 밤 빨래를 걷으며
한참 별을 보고 바람을 맞았는데
오늘은 한낮은 그렇게 뜨겁더니, 이제 바람은 곧 가을이라고 볼을 비비며 다가오는 것 같다
찜통 같은 가게
탈것 같은 밭
이라고 적었던 지난 8월 달력을 접고
9월에는, 이제는 더워도 가을이라고 적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