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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나의 삶

by 유수한 책방

상담 교수님을 뵙고 나오는 골목길, 담을 헐어놓은 집 마당에 작은 사과나무가 보였다. 작게 달린 사과를 손을 벗어 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저런 사과를 먹어본 적이 있다

잔챙이고 얼룩덜룩한 무늬가 맛이 없어 보이지만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에 먹는 내내 입안에 침이 가시질 않았다. 못난이라고 모르는 사람들은 저렇게 귀한 사과를 모른다



모른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사람들은 모른다.


나의 상황을, 암암리에 아는 사람들은 내 눈치를 보며, 이혼 얘기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혼가정에서 커가는 아이의 심리상태와 상처와 훗날 제대로 된 가정을 갖기 힘들다는 사실이라는 추론을 얘기했다

내 눈치를 살핀 건지, 아니면 나를 밞은 건지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나를 상처주기 위함이었다면, 절반은 성공했다.

이혼으로 성격의 결함을 발견했다는 말들은 상처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은 내 존재를 쥐고 흔드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하고 결론짓는 타인의 삶으로 고통받는 타인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기나 할까 싶었다.


선생님이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가실 거라 믿습니다

교수님은 상담을 끝내고 일어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애들 아빠에게 벌어진 일들,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할 때도 마음에 작은 미동도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다만, 나의 가족들은 걱정이라는 언어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욕하고 흔들 때마다 나는 더 가족들에게 벽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나에게 온갖 걱정들을 비난이라는 말들로 뱉어내고 나면, 나의 삶을 위로하며 나를 달래주었지만 그건 맞아서 얻어터진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찾지 않았고

벼랑 끝에 그는 나만 찾았다.




왜..


왜 날 찾는 거니



미안해서..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찾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애들에게 말을 했다. 이제 엄마는 더 바쁘게 지낼 테니까 공부도, 운동도 스스로 해야 한다고.. 당부와 협박을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전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와 그리고 해야 할 범위들을 알려주고 딸에게도 어리지만 이제 어리광만 부릴 수 없음을 얘기해 주었더니, 9살 딸은 울기만 했다.

울고 싶을 때 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 앞에서만 울기로 약속을 정했다.

잠든 애들 발을 만지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생각했다.



더러더러 달린 사과를 하나 따서, 그들에게 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삶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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