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8월 15일부터 8월 말까지 개인사정으로 가게를 못 합니다
사장님 수첩 한쪽에 적어 북 찢어낸 종이로 급하게 써 내려간, 영업 중단 안내글
사장님이 얼마 전 깨를 씻고 물이 흥건한 바닥에서 넘어지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며칠 고관절 쪽이 아파서 걷질 못하셨다.
사장님 따님이 병원 예약 후 2주 만에 간 종합병원에서 받은 처치도 효과가 없어서 쉰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떡집 사장님 말씀으로는 한참 뒤에 인성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수술을 해보니, 허리가 아니라 골반, 고관절 쪽에서 고름이 한 바가지가 쏟아졌다고 말씀하셨다
나이 든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질 못해..
마른 긴 하셨지만, 건강하셨던 사장님이 갑자기 수술이라니..
사장님은 옆가르마를 넘겨 정갈한 빗질로 머리를 늘 단정하게 하셨다. 한여름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여름 외에는 머리가 흐트러지는 걸 본 적도 없었다.
새빨간 쨍한 카디건에 회색 정장 바지를 입고 출근하시고, 하루는 진한 녹색 카디건으로 멋을 내시곤 하셨다.
사장님~ 저도 이런 녹색 좋아해요!라고 사장님을 잡으면, 옷을 벗는 시늉을 하시며 줄까? 하셨다
아침 내내, 참깨를 볶고 기름을 짜면 고소한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기름냄새를 맡게 되면 ,
왜 사이좋은 부부사이를 깨 볶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침 7시 8시 사이에 문을 열면, 고추를 빻으러 오시는 분들, 참깨 들깨를 짜러 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으셨는데 단골들이 많아 사장님이 문을 열지 않은 날에도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에서 사장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 사장님 편찮으셔서, 당분간 장사 못하신데요 "
" 못 나와요? "
" 네.... "
" 아니, 나는 여기 올라고 버스 타고 사창리에서 왔는데... 전화번호 몰라요? "
" 저기, 핸드폰 번호 있는데요.. 전화해도 못 받으세요.. "
사장님이 병원에 수술을 했다는 소식 이후로 기름집 앞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손님들께는
가게일을 하다 말고 나가서 , 사장님이 편찮으셔서 당분간 영업이 어렵다는 얘기를 전했다
가게 근처 언덕 내려가는 길, 파란 대문이 사장님 댁인데
가끔 사장님 안부가 궁금해서,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사장님이 기르시는 진돗개 대박이 이름을 부르곤 했다
아무 기척도 없는 대문 앞을 서성이다 돌아오길 몇 번.
셔터가 내려진, 일미 기름집 앞에 사장님이 기르시던 화분이 다 말라가길래
비를 맞을 수 있는 가게 앞으로 옮겨놓고 주인이 없는 이곳에서 사장님을 기다리는 건
너와 나뿐이라 말을 빗물을 손끝에 담아 화분에 적어놓고 가게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렇게 말랐는데, 아들은 엄마보다 더 크네,
엄마가 아들만 이뻐했나 보다
내가 늦은 가게일에 애들을 못 챙겨서 속상하다는 말에, 애들을 보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엄마가 애들 손이 안 간다고 하드만, 엄마손이 다 갔네.. 애들이 잘 크구먼
인사도 잘하고
장사를 하며, 더운 이 건물에서 땀인지 핏물인지를 흘리며 일한건 단 하나
애들이었다
돈을 벌면 애들 걱정, 돈을 안 벌어도 애들 걱정이라는 말에 사장님은 애들도 봐줘야 하는 때가 있어서
그걸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 얘기에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을 그렁그렁하는 내가 미안하셨는지
우리 아들을 보고 그렇게 잘 컸다고 말씀해 주셨다
애들은 엄마가 중심 지키고 있으면, 엄마 그림자 보고 잘 커
잘 컸구먼.. 엄마손이 다 갔구먼
지겨운 이 더위 끝에서 아침마다 열기 가득한 가게문을 열고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내 뒷모습을 보고, 내 그림자를 보고 커갈 애들을 생각해서,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세상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럼 없이 사려고 애를 쓰곤 했다
사장님은 늘, 나를 그렇게 반겨하셨다
친정엄마보다도 열 살은 더 많은 이분이 내 친구같이 그렇게 편안했다
여름 장마가 쏟아지는 날, 사장님 구들장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한참 보고
아무 말 없이 가게로 돌아왔다
여름에 닫힌 가게문이, 이제 가을이 다와도 열릴 줄 모른다
지친 여름을 달래주던 내 친구, 일미 기름집 사장님은 아무 기약 없이 나에게 전화 한 통 없이
누워계신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닫힌 셔터 앞에 한참 서서, 기름집 간판을 바라본다
그리고, 늦은 출근길에 커피 한찬 마시라고 웃으시며
밭에 들러 출근이 늦은 나에게 그렇게 게을러 무슨 장사를 하냐고 웃으며 농담하는
사장님을 곧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