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기 직전, 예하가 코가 막혔다고 코를 푸는데
바닥으로 피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여름 장대비 처럼 굵은 빗방울같은 코피가 예하 팔목을 쭉 따라 흘러서
나는 급히 휴지로 코를 막고
팔을 걷어올리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한쪽 손으로 예하 코를 막고
다른손으로는 예하 손을 씻겼다
고개를 숙이고 코에 휴지를 대고 한참 앉아있던 예하 콧대위에 얼음 주머니를 놓아도
코피가 줄어들질 않고, 목으로 코피가 계속 넘어갔다.
엄마, 그때 근용이한테 맞은 다음부터 코피가 계속 나..
그래.. 그때부터 심하게 코피가 나지..
참.......
작년 겨울 예하가 친구 근용이에게 눈을 던져 장난을 쳤다고 , 근용이가 다가와 주먹으로 예하
얼굴을 때렸다고 했다
그날 예하는 앞섬 전체가 벌겋게 물들을 정도로 코피를 쏟았다.
코피를 쏟았다는 예하 전화를 받고도 놀랐지만, 예하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화가나서
몸이 떨렸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께 전화를 했더니, 아이들 사이에 자주 있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얘기를 하셨다.
여자 아이가 , 남자아이에게 주먹으로 맞아 코피를 쏟았는데
정작 가해자인 남자아이는, 사과도 하지않고 자릴 뜬게 아이들 사이에 자주 있는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본인이 다독이겠다. 아이들을 잘 지도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예하는 본인은 근용이와 친하고, 내가 먼저 근용이한테 눈을 던졌어
엄마.. 내가 먼저 잘못했어
나 ..근용이랑 친해..
그리고 근용이 무지 착해!!
착한놈이 널 때리고 .. 피가 이렇게 철철 나는데, 그냥 가버려? 그게 뭐가 착한거야 예하야~!!
밤새도록 예하가 괜찮으면 괜찮은거라고 생각했지만, 속이 상해서 귀가 멍멍해지도록 울었다
그래 니가 괜찮으면 엄마도 괜찮을것같다고 하고 학교에 보내면서도
혹시나 근용이 어머님이 사과라도 해주지않을까 하는 마음에 며칠동안 낯선 전화를 기다렸고
전화가 오면, 애들 사이에 있는 일이라 그냥 넘어갈수없다는 말을 하고싶었다. 아니다,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근용이도 똑같이 맞으면 기분이 어떻겠냐? 하고싶은 말들과 고상하게 혼낼 방법들을 생각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3주전,
아이들 공개수업이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갑작스럽게 시작된 김장에 바빠서 아이들 학교는 커녕 하루종일 김장 심부름을 하느라 수육을 삶아놓고도 밥한술 뜨지못했다.
예하는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 할머니도 오고 다 그랬는데.. 나랑 근용이 엄마만 안왔어
근용이 엄마는 외국사람이라 우리나라 말을 몰라서 못온거 같은데.. 엄마는 우리나라 말 다 알면서 왜 안온거야? 김장이 그렇게 중요했어? 나보다 더 중요한거였어?
한번도 투정 부리지않던 예하가 따지듯 물었다.
엄마가 못오면 , 아빠한테 연락해주지.. 아빠라도 불러주지, 나는 아빠랑 싸운적이 없었잖아..
서러운 예하는 깊은밤 등을 돌리고 누워 내내 울었다.
나는 미안해서 예하를 안아주었는데 예하는 이부자리 끝으로 몸을 빼더니, 훌쩍거리며 잠이 들었다
나는 우리 예하만 엄마가 없었던게 아니여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작년 이맘때쯤엔 따지고 싶어서 며칠밤을 뒤척이게 했던 근용이 엄마가 감사했다.
엄마, 근용이 동생 무용이가 수술했는데, 죽었데!
1학년에 다니는 근용이 동생 무용이가 뇌출혈로 수술을 했는데 깨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근용이 엄마는 무용이를 지키느라 공개수업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근용이 엄마는 19살에 한국에 시집와서, 그해 근용이와 동생 둘을 더 낳고 십년을 살고있다고 했다. 근용이 아버님은 오년전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구십이 다된, 시어머님을 모시고 아이셋을 키우며 살던 스물아홉 근용이 엄마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왜 2학년때 선생님이 .. 예하에게 있었던 일들을 아이들 사이에서 자주 있는 일로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셨는지 이해가 됐다.
조문도 받지않은 무용이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오늘 학교 선생님과 어머님 몇몇분이 모여 근용이 엄마를 찾아갔다는 소식에, 나는 바쁘다는 말로 핑계를 대고 자릴 같이 하지 않았다
근용이 엄마를 볼 자신도 없고, 깊은 슬픔에 관여할수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은 내가 견딜수없을것같았다
잃어버린 무용이의 이름을 지우려고, 선생님도 함께한 어머님들도 근용이 엄마라고 불렀다는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않고, 무용이 엄마 라고 부를것같았다
곁에 없지만, 마음속에 큰불로 살아서 나를 휘감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마음속에 일렁이는 불이 나를 태우지않게 , 그 불을 감싸않을수 있을것같았다
사람들이 없어진 아이를 나를 위해서 꽁꽁 숨기고 없애주려고 할때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되려 찾을수없는 아이의 이름이라도 허공에
불러보며 아이를 편히 잊을수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밤이 깊어, 날이 쌀쌀한 밤
나는 걷고싶었고
아직 어린 무용이 엄마를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을 애리게, 뜨겁게, 시리게 , 끝없이, 보고싶은 마음에 가슴을 누르는 ..
아이의 이름으로
엄마를 불러주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