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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Jul 24. 2020

탈샴푸 도전 3, 비누로 머리 감기

지긋지긋한 '비누때'여, 물렀거라!

샴푸가 환경에도 좋지 않고,

몸에도 좋지 않다는 얘기들을 접하면서

탈샴푸에 도전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첫 한 달은 소프넛으로 머리를 감으려고 고군분투했더랬다.

https://brunch.co.kr/@ksy870223/74


그러나 나의 머릿기름은 그리 쉽게 없어지는 놈이 아니었다.

소프넛으로는 내 머릿기름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에는 샴푸와 소프넛을 번갈아 사용하게 되었다.

https://brunch.co.kr/@ksy870223/86



그러다가 비누가 눈에 들어왔다.

'선량'님께서 비누로 머리를 감고 계시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게 그 계기다.


동남아 여행을 다니던 시절

비누로 머리 감고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어

그간은 비누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소프넛으로 머릿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비누는 내 유분을 확실하게 제거해줄 거라는,

그래서 오히려 머리가 뻣뻣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기름이라면 지긋지긋했던 터였다.

뻣뻣이 어떤 느낌인지 한번 느껴보자 했다.


비누를 들고 머리에 문질렀다.

문지르자마자 기름이 쏙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소프넛에 머리를 감는 것보다 간편하고 좋았다.

비누 거품도 금세 헹궈졌다.

몸도 어차피 비누로 씻고 있으니

All-in-one이 따로 없었다.


보송한 마음으로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는데,

그놈이 손가락에 걸렸다.

알 수 없는 끈적함.


그제야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동남아에서 비누로 머리를 감았을 때,

나는 머리가 뻣뻣함과 동시에 떡진 기분을 느꼈더랬다.


얼른 미니멀 라이프 카페와 제로 웨이스트 카페를 검색했다.

비누로 머리를 감으려면 꼭 식초나 구연산으로 마무리 헹굼을 해야 한단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끈적함은 '비누때'라고 했다.

비누곽 밑, 세면대 자리가 하얗게 되어있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비누때가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비누때 이놈은 무시무시한 놈이라서

조만간 머리빗도 하얗게 점령하고야 만다.


다음 샤워 때에는 식초로 마무리 헹굼을 해보았다.

비누만 썼을 때보다는 확실히 좋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했다.

그나마 식초는 며칠을 못 버티고 똑 떨어졌다.


그러던 차,

EM발효액으로 머리를 감는다는

카페글을 보게 되었다.

EM발표액에 대해 안 그래도 궁금했었다.

그 길로 발표액을 한 병 구입했다.


EM의 효과는 대단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머리는 분명 물에 풀어 파도에 하늘거리는 미역처럼 감아주었거늘

마른 내 머리는 여전히 젖은 미역,

그것도 빗이 들어갈 틈조차 주지 않는 한 덩어리의 미역이 되어버렸다.


항상 붕붕 뜨던 내 머리는

그날만큼은 정갈하게 쪽진 머리로 다시 태어났다.


다시 비누로 돌아왔다.

카페를 더 열심히 뒤졌다.

비누로 머리를 감을 때에도

노푸처럼 면장갑 등으로 문질러주면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


소프넛으로 머리 감을 때 쓰던 삼베천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감았더니

한결 나았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내 손에 들어온 극세사 수세미(!)로 머리를 감았을 때는

그제야 샴푸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극세사 천이 좋다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더랬다.

그렇지만 그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이라 절대 사지 않고 버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직장동료가 내 손에 극세사 수세미를 쥐어줬다!

필요해 보였나 보다.

슬프게도 극세사 만세다!


정착한 방법

1. 극세사 수세미에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낸다.

2. 푹 젖은 머리에 거품 난 수세미를 문질문질 한다.

3. 거품을 헹구어 낼 때에도 수세미질을 하면 훨씬 더 좋다.

4. 마지막 헹굼시, 식초나 구연산 푼 물에 머리를 헹궈주면 신세계를 경험할 지어다.

+비누때가 앉은 머리빗은 머리 감기 전, 비누칠한 머리에 살살 빗질을 해주면 벗겨진다.

  구연산을 쓰고 나서는 비누때가 한결 덜하다.


오늘 나는 탈샴푸 후 처음으로 머리를 풀고 출근했다.

수세미로 머리를 문지른 이후로 식초가 똑 떨어져 한동안 비누로만 감았더랬다.

그러다가 구연산 생각이 나서

어젯밤, 구연산 푼 물로 헹굼을 했더니

지금 내 머릿결은 감동 그 자체다. -주관 담뿍 주의-

손으로 대충 슥슥해도 부드럽게 머리가 빗긴다.

실로 무려 두 달여만에 머리가 만족스럽다.


탈샴푸를 도전했던 많은 이들이

다시 샴푸로 되돌아간다.

탈샴푸에 성공한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자들에게

부디 중도포기 않기를 당부, 또 당부하는 이유는

그만큼 샴푸의 편리함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중도포기의 유혹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1. 지속적으로 발생할 플라스틱 샴푸통(!)이 싫었다.

2. 성공만 한다면 비누 하나로(처음에는 소프넛 하나일 줄 알았지.) 샤워를 다 끝낼 수 있다는 간편함.

3. 샴푸를 끊었더니 생리통이 줄었다는 수많은 간증 글들.

+ 샴푸를 끊었더니 머리가 더 굵어졌다거나 머리가 덜 빠진다는 간증글들.


나는 생리통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샴푸를 끊었더니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샴푸가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이리라.


고체인 비누를,

그것도 쉽게 헹궈지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뻣뻣하게 만드는 그 비누를

물처럼 만들고,

거품은 대충 해도 풍성하게, 헹굼은 쉬운 것처럼,

그리고 머릿결은 보드랍게 하느라

얼마나 많은 화학물이 혼합되었을까?


또, 나는 머리숱과 굵기는 어디 가도 뒤지지 않지만

내 성공담으로 남편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남편의 소중한 머릿털을 잘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소프넛에서 비누로 넘어오고 나니 어째 소프넛 때보다는 머리가 더 빠지고 있는 것 같다(!).

식초가 떨어져서 비누로만 감았던 시절,

뻣뻣한 머리를 헹구려니 머리칼이 견디지 못하고 훅훅 빠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탈샴푸 선구자들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그들은 많은 확률로 머리가 더 굵어지고 많아졌다고 하니

시간을 갖고 내 풍성한 머리칼들이 어찌 변할지 지켜보려 한다.

또 그들 중에는 결국 노푸(물로만 머리 감기)의 경지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다.

노푸라면 더 많은 확률로 머리털 증가를 보고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탈샴푸의 희망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쉽게 거품을 내어 유분을 쏙 빼면서도 인위적 부드러움을 주는 샴푸에 적응한 두피를

비누에 적응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덧, 무슨 비누를 쓰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저는 가장 저렴한 비누를 대량 구매해 둔 것이 있어 그 비누를 씁니다.

도브 뷰티바로 도전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비누로 머리 감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싼 비누일수록 좋다고도 합니다.

세탁비누로 머리를 감으시는 분들도 계시다면 짐작이 가시나요?

비싼 비누, 좋겠지만 저는 가격이 부담되더라고요.

집에 있는 비누로, 그리고 꼭 식초나 구연산과 함께 도전해보세요!


Image by silviarit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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