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끔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오글거리네
아가씨가 너무 친절하네!
백화점에서 일하는 동안 제일 많이 들은 호칭이라면 "아가씨" 그리고 "저기요"였다.
난 분명 아줌마인데 백화점에서 늘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댔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그닥 기분좋게 들리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기요"보다는 나은 호칭이긴 하다.
"저기요"라고 부르는 순간은 늘 컴플레인이 뒤따르거나 아니면 진상고객일 확률이 백퍼센트였기 때문이다.
어떤날은 그냥 평소 텐션 그대로 그저 "고객님"하면서 그냥 눈으로만 매장을 살피던 분에게 "착용해보셔도 되요"라고 그 말만 했을뿐인데 나이 지긋하시던 할머니 고객님이 가던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서 "그냥 갈려고 했는데 아가씨가 너무 친절해서 다시 들어와본다"하셨다.
나는 사실 그 순간 약간의 소름이 돋았다.
나란 인간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순하게 친절을 베풀고, 또 그런말을 들을 만큼 특별히 뭘 한게 없는데 가끔씩 그런 말들을 내게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의아했다. 내가 어떻게 했더라?방금?뭐라고 말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하시는 말씀에 대답해드리고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는데?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아주 과장된 친절보다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런 배려를 고객들도 알아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나한테 물건을 팔려고 저러나?싶은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나는 이제 그냥 자기일에 열심일뿐인 직원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날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오글오글 거렸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고..
많은 진상고객들 중에서도 가끔 그런 진심을 알아주는 고객들 덕분에 그래도 힘겨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동아줄 같기도 했다.
그런 분들은 지금도 기억에 오래남고,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더욱 크다.
지금은 백화점보다 더 많은 진상고객들이 있는 매장에서 근무중이다. 욕설은 기본이고, 억지부리고 막말하고 가끔 매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고객들도 있다.
그런 모습을 티비에서만 보다가 내가 당하니..멘탈을 바로잡기가 정말 힘들다.
내가 하는 말투, 눈빛. 행동 모든것들이 그들이 잡을 꼬투리가 되는 것이니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고 있다.
다른길을 모색해보자..하고..
진짜 나를 보여준다면 나는 정말 서비스직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나더러 너무 시크하고 단답형이라서 무섭게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크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말들에는 더이상 타격감이 없다. 그냥 그들이 보는 나의 다른 한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친절하고 나머지는 그냥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게 옳고 그른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냥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에 태클을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경력단절과 더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슬프지만, 한편으론 다른 경험을 해보니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다가..단단해지기도 했다가..그런다.
그냥.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면서 계속 서비스직을 하는게 괜찮은건지 모르겠다.
사실 요즘 여기저기 다시 아프기 시작해서 이제 그만두겠노라고 매장에 이야기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말할 작정이다.
내 몸이 아프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건강을 한번 잃어봤는데, 두번은 싫다. 난 여전히 암환자이며 암과 동행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오글거리던 순간은 아마도 누군가 나를 칭찬한다는것, 칭찬받는다는것이 아주 어색해서 내가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나를 그렇게 칭찬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아닌 나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별로 즐거운 기억이 없는 백화점이었지만, 안녕!하고 나니 새삼 그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안쓰럽고 안쓰러운 오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