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인
<무지개는 오크를 세고>
허망을 가슴에 품고 좀 쉬어 볼게요
삭혀야 했던 세월만큼 잡히지 않는 시간을 만져 볼게요
무지개로 오크*라도 세어 볼게요
어떤 짐도 가벼운 것은 없네요 남김없이 내려놓을 수 없네요
어차피 인생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없는데
아직도 끼니 걱정하는 부모님 나 어린아이들
양어깨 위에 지워진 등짐을 모두 내려놓고
느리게 일곱 빛깔로 나아갈 수 있는지
초록 바다 머언 끝이면 무지개를 만날 수 있을까요
먼지 나는 길가에 하얀 망초가, 토끼풀꽃이
빠안히 쳐다보는데 오크를 피할 수 있을까요
날 잊고 잠들어 버린 당신을 깨울까요?
혹시 당신이 지하의 오크일까요?
귀에 땀이 나도록 가는 허리 휘어지도록
어깨가 무거워지도록 청각 경고 문자가 올라와요
깊은 밤 붉은색으로 속삭이지요
소음이든 풀잎이든 과한 밤을 새고 나면
인생을 무지개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크처럼 긴 이빨 드러내고 있을까요
*오크 : <반제의 제왕>에서 지하에 사는 괴물 인간
시인수첩 2019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