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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Sep 07. 2023

공간 필설, 슈필라움(Spielraum)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인 <자기만의 방>은 출판 당시 100만 스테디셀러로 엄청난 선풍을 일으키며 특히 여성과 글쓰기에 대하여 많은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의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공간과 독립적인 돈은 정말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 당시,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거의 혁명적 선언에 가까웠다. 인권이 그만큼 없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자신만의 공간을 선호하는 두드러지는 문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만의 공간은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화가나 교수 등 집필을 하는 사람, 전문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개인의 공간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말은 타인에게 방해를 받지 않으며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독일어 ‘놀다’의 ‘슈필(spiel)’과 ‘공간’의 ‘라움(raum)’의 합성어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필요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반대로 혼자 있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도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심신이 지쳐 있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재충전하고 힐링하는 곳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간섭받지 않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는 자신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자족감을 주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남에게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도 않으며 마음까지 순화되고 자아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따라서 편안한 휴식이 결국은 재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꽂혀 있고 아늑한 공간이라면 자신만의 훌륭한 안식처가 된다.


이러한 자신만의 공간을 일찍부터 주창한 것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즉 슈필라움이다. 당시의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공간 자체가 없었다. 대게 대가족으로 살면서 자매끼리 한방을 쓰거나 공동의 공간으로 배치된 거실은 여러 사람의 간섭이 있는 곳으로 자신만의 활동, 예술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여성이 글을 쓰는 것, 고등교육을 받는 것, 심지어 예금 계좌를 개설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다.


이에 여성 소설가들은 거실에서 눈치를 보면서 소설을 쓰고 간섭을 피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종이를 사다가 글을 써야 하였다. 당시 종이값은 비쌌다. 조선시대에 책 한 권은 기와집 한 채 값이라 하지 않던가?


출판사에는 가명인 남자의 이름으로 원고를 보내어 출판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전 세계가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구조가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다. 이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슈필라움은 물리적 공간이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곳이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들과 세계와의 심리적 안전거리 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글을 쓰든 다른 일을 하든 꼭 필요한 심리적 공간이다.

공간에서 주체로 머무는 것은 커다란 만족이다. 때로는 외로움이다. 만족과 외로움은 개인의 심성에 자양분이기도 하다. 앙리 르페부르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공간은 수동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주체로 머무는 공간이며 이것은 인간과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을 재창조하도록 돕는 적극적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은 타인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행복이 가득하지 않을까? 자신의 가능성을 가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슈필라움이 될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공간이 필요하다. 엄마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작은 동물들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많은 도움을 주고받지만 또 많은 부대낌도 함께 겪어내야 한다. 이러한 섞임의 문화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주체적인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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