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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May 12. 2024

詩의 옹립(擁立)

김신영

은하의 이녁에 나와

맑은 여울에 코를 빠뜨리고
 
애가 끓는 만큼
긴 회랑에 앉아 깊은 한기를 뿜는다
 
적막을 뚫고 끓어대는 저편
도시의 자글대는 소리 어지러이 들리네
 
정적이 대지에 기둥을 심고
여기는 가느다랗게 한 줄 별빛을 긋고
 
지극한 시구 하나 옹립하려
아수라와 악수를 하였나
 
가슴 아프게 끓어 대는 시를 안고
와락 넘쳐 버린 허랑 세월이었나


그도 아니면, 시에 깊은 키스를 하고
산 입에 거미줄을 치고 있나
 
우주의 수레에 끼어
시구를 옹립하는 일
 
해밝은 빛만큼
이다지 끓어올라 반짝거린다


 문학청춘 2017 겨울호, <맨발의 99만 보> 시산맥 수록


모처럼 “옹립(擁立)”이란 시어를 만났다. 시인 김신영은 “소리의 옹립”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시의 옹립”을 갈망한다. 아니, 시의 옹립은 곧 시인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소리 ‘영혼의 울림’ 그 자체다. 그것은 폐부를 찌르는 단말마의 외침이고 피와 땀의 결정체다.


받들어 모신다는 뜻의 한자어 ‘옹립(擁立)’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본다. 흔히 왕으로 추대하거나 위대한 인물을 세울 때 쓰이는 단어인 만큼 시인이 추구하는 ‘좋은 시’에 대한 열망 또한 클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 의 시구처럼 매 순간 ‘시어’를 제왕처럼 소중히 받드는 마음이 느껴진다.

매일 밤,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긴다. 아늑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산골짜기 도피처로 옮겨도 “저편, 도시의 지글대는 소리”에 맥박 수는 빨라지고 영혼 없는 시인이 되기 싫어 또다시 안간힘을 쓴다. 


그의 시 쓰기는 “산 입에 거미줄을 치고” 빛나는 “시구 하나” 찾기 위해 악의 신 “아수라”와도 손잡고 싶은 심정이다. 누군가는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기까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극기의 과정을 거쳤으리라.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그의 인생은 형벌처럼 “제대로 한번 탈바꿈도 없이” 어설픈 돌연변이 “애끓는 성충”의 모습으로 서 있다. 몹쓸 죄인의 너울을 쓴 채 “무저갱”에 갇혀있다. 그 와중에 시인의 꿈은 살아있다. 하늘과 땅을 통틀어 세상천지 및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시구를 옹립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시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김선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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