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 특집 2024. 겨울호
문학과 인생
김신영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별에서 별로 이동하는 어린 왕자는 다섯 번째 아주 작은 별에서 점등인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고, 명령에 따라 오직 등을 점멸하면서 별을 밝히는 것만 일삼는 바보였다. 문학은 어쩌면 점등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천형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보처럼 매일 매시간 등을 켜야 하고 등을 환하게 켜서 사람들에게 낮인지 밤인지 알리고 일할 시간인지 잘 시간인지 알려야 하는 고달픈 직업인이라 하겠다.
2025년으로 등단 32년 차 시인인 나는 젊은 시절 문청이 되어 문학을 몹시 사모하였다. 문학이 인생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때 만난 것이 오세영 교수님이다. 내 마음의 스승인 바보 시인이시다. 현대문학 강의실에서 처음 본 선생님은 시커먼 얼굴빛을 하여, 내 상상과 다른 점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청시절 오세영교수, 감태준교수, 그리고 1992년 문우들과 함께-
선생님은 내 영혼의 시심을 밝히기 위해 내 시가 시가 아닌 이유를 설명하였고 나는 실망을 거듭한 나머지 그 날밤에 시를 써야 하나, 내게 시적 재능이 있나, 과연 내가 시인이 될 수 있나 하는 갈등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이 밝아오고 책상을 다시 끌어안고 한 줄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눅진한 피곤과 함께 시를 잘 쓸 수 있는지 시인의 인생을 살 수는 있는지 친구에게 편지하듯이 써 내려갔다. 그렇게 잠 한숨도 자지 못하고 출근했다. 시를 출력해서 몇 군데를 고쳐 계간 동서문학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봄호 발표라고 나왔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 또 떨어졌겠거니 했다. 그해 여름이 다가오고 나는 더위와 싸우며 회사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동서문학사라는 것이다. 구독료는 냈다고 항변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선생님~ 하고 말꼬리가 길었다. 당선통보는 그렇게 여름 시작 무렵에 왔다. 사정이 있어 늦게 발표했다는 전언이었다. 그것은 한줄기 빛 내림, 구원의 빛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깊은 사유에 빠져 써낸 몇 작품이 동서문학에 당선되었다. 그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것이다. 문학을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이자 나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등단식까지 남산에 있는 최고급 힐튼호텔에서 치르자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선배 시인들의 작태로 나는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비하는 물론 듣기도 민망한 음담패설을 버젓이 일삼으며 여성 신인을 괴롭혔다. 그때는 그런 일이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이에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원고를 문학과 지성사에 보내고, 두 번의 투고 끝에 나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시집을 내는 행운을 걸머지게 되었다. 이 일로 나는 ‘문지 출신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나,
첫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 지성사 1996
케리커쳐 이제하 소설가
연이은 선배 문인들의 작태는 그저 두고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에 문단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나는 긴 칩거에 들어갔다. 시를 쓰는지 마는지 간간이 시집을 내었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그사이에 문학을 놓을 수 없어 육아를 병행하면서 학업을 이어갔고 임신 9개월 차에도 학교에 다녔다. 당시 대학원 건물은 캠퍼스의 가장 꼭대기에 있었는데 무거운 배를 끌어안고 다녔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가상하다. 결국 중앙대에서 서울대 오세영 교수님이 박사학위 심사위원장이 되어 박사학위를 받기에 이른다. 이어서 여러 대학에서 대학 국어, 교양 국어를 가르치며 시간강사를 전전하였다. 홍익대 대전대 호서대 삼육대 등 이른바 연구실 없이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펼치는 보따리 장사를 하였다.
과연 문학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그때의 나는 아직도 진정한 점등인이 아닌 상태였다. 나의 일상이나 생활 주변을 끄적거리는 시 창작을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안 되는 작품집은 나의 핍진한 생활로 채워졌고, 상상력은 한계를 드러내었다. 또한, 남편은 내게 힘을 주기도 하였지만 때로 내 힘을 모조리 뺏어가기도 하였다. 결국 집은 폭망 하였고, 모든 가산을 탕진한 채 2011년 겨울, 이천으로 이사하였다. 처음 맞은 이천의 겨울은 혹독하였다. 그때 우리는 헤어졌다. 그 어두운 인생이 <불혹의 묵시록>(2007)이란 시집에 드러나 있다.
이천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핍진을 털고 일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걸었다, 그 시기에 나온 시집이 <맨발의 99만 보>(2017)다. 하루 3만보를 걷기도 하면서 인생과 문학과 삶과 가족을 생각하였다. 이제 반드시 희망이어야 하는 이천의 땅, 이 생면부지의 이천에서 나는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남편이 망쳐놓은 가정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맨발로 시작하는 인생인 것이다.
이천은 하이닉스가 유명하다.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가 여러 업체의 협업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반도체 회사가 되어 있다. 내가 이천에 처음 발 디디던 시절에 하이닉스는 sk가 인수하고 날로 급성장 중이었다. 하이닉스 옆 아이파크에 살던 나는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그곳에서 신호수를 하기도 하였다. 그 고난의 행군이 딱 99일이었으며, 그렇게 내가 걸은 걸음이 딱 99만 보쯤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막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들의 민낯을 본 천애의 고아가 된 시간이었다. 혈관으로 신원을 체크할 정도로 사람이 군집하여 공사가 진행되던 국가 기간산업의 뜨거운 현장. 이른바 ‘M-14’이라 불렸다. 나는 그곳에서 반도체의 화학약품으로 쓰이는 순도 높은 산소나 질소 등을 감시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열악한 공사 현장에 들어가면 나는 그들이 안전한지 생사를 귀대고 감독하고 감시하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강렬하여 시집으로 탄생한 것이다. 핍진한 고난의 기록, 맨발의 기록, 박사학위자가 천둥벌거숭이로 노동현장에서 끊임없이 걷던 기록, 걸으면서 비계에서도 조롱을 받으면서 끄적끄적 시를 쓰던 기록.
어찌 되었든 대학강사로는 생업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가르치는 게 특기인 나는 얼마 되지 않아서 학원업을 시작했다. 작게 집에서 공부방을 하다가 조금씩 키워서 50여 평의 학원으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그것도 그만두고 다른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새로운 길에 있으며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한다. <마술 상점>(2021)은 그런 전환의 지점에서 탄생하였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점등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마술 같은 일이 넘쳐나기를 소망하였다. 그 시집으로 받은 상이 심산재단의 시문학상(2023)이다.
그러는 한편, 여기저기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나 스스로도 명강의라고 자부하는 몇몇 강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구지원사업인 예술융복합시대 문학의 좌표에서 <시와 건축>과, 국제펜 한국본부에서 진행한 제7차 세계한글작가대회의 <한글문학과 세계화의 쟁점>, 그 외에 많은 시인론, 시론 등이 있다.
지난해 2024년에는 이문열 선생님의 부악문원에서 작가 레지던스로 상주작가가 되었다. 글 쓰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 여기며 글을 다듬었다. 그러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천문인협회의 회장이 되어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닌 상황이 되어 이리저리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문학의 인생은 바보의 삶과 같다. 자신의 아름답고 슬프고 어려운 이야기도 쓰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를 쓰고 칼럼을 쓰다 보니 기독여성신문사에서는 여성지도자상(2024)을 받기도 하였다. 아직 봄이 멀었지만 2025년 벽두에 내 시가 세계 유수 매거진에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봄에게 미안하다”는 벨기에의 아투니스 갤럭시 포이트리 매거진, 알바니아 키케로니 신문, 파키스탄의 신드쿠리 신문, 인도 사르노라타,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테라리 매거진 등이 그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이 내게는 그대로 길이며 문학이 되었다.
최근의 네 번째 시집인 <마술상점>은 그러한 소망을 담고 있다. 마술 상점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며, 일어서게 하고 마음을 치유하게 하는 시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즉 치유와 용서를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집이다. 특히 <하루를 탁발하다>나 <별등을 달다>는 성찰이 돋보이는 시라 하겠다.
이제 나는 점등인으로 자부하는 시인이다. 스스로 점등인이 되어 각기 다른 난삽한 영혼마다 별등을 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딜 가나 별등지기 또는 점등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그만큼 이제는 시를 쓸 때 나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을 위로하고 위무하며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시와 글에 담아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인으로서 점등인의 사명이다. 앞으로도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성찰뿐만 아니라 별등지기로서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시와 칼럼과 평론을 쓸 것이다. 마지막으로 <별등을 달다>와 <봄에게 미안하다>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 점등인의 사명
하늘에 별등을 달고
영혼에 별등을 다는
하나님의 창에도 환한 등을 다는
모든 마음에 별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착한 시인
오늘을 점등하러 골목을 나선다
사람마다 난삽한 영혼의 지도
어둠마다 맑은 별등을 달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신새벽
그대의 마음 창가에도
등에 반짝거리는지 올려다본다
사람들 가슴에 한 빛, 별을 켜는 일
그 천직으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공원을 돌아 나오면
유엔 성냥으로 확 그어지는 불꽃
미욱한 가슴이 조금씩 환해진다
반짝이는 별을 간직한
라디오 진행자가
점등하는 모든 시인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나도 그에게 목례를 한다
찬바람 부는 겨울 밀어
한 촉을 잡고
긴 시간 겨울이 끝인 줄 알았는데
언덕 너머 바람에 흔들리는 얼굴을 보니 반갑다
재두루미 머리에 깃을 치고 오르는 봄
개천에 이미 당도해 있는 봄을 목격한다
그대, 갯버들 벌써 흐드러지는데
이제야 겨울 지나 그대를 만난다
봄에게 미안하다. 이미 당도해 있는데
열이 오르고 기침으로 쿨럭이면서
긴 밤을 보냈지
외롭고 쓸쓸하게 깊이 병든 날에도
봄은 오는구나
숭고하게 오는 봄
그대에게 미안하다
봄에게 미안하다
<마술상점> 시인수첩 여우난골 2021
계절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을 잊을 만큼 아팠다. 이미 당도해 있는 화사한 봄을 보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반기고 즐기지 못해 미안하다.
대학교재 공동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