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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23. 2023

천명관 소설 <고래>를 읽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소설이다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다. 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뭔가 마음이 가는 대로 썼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좀 자유롭게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바로 느꼈다. 그의 다른 소설을 읽고나서부터 생각했다. '그는 이야기꾼이라고.' 딱 그렇다. <고래>는 작가가 친구들을 만나 그냥 술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소설이다. 막힘없이, 입보다는 머리가 말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먼 길을 걸어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도 했고.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패와 좌절에도 끄떡없이, 그냥 살아간다. 아니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원래의 제목은 '붉은 벽돌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반대를 했다. 왜냐하면 '왕'이라든가 '여왕'이라는 제목이 들어가면 망한다, 라서 였다고 천 작가가 밝혔다. 책에는 벽돌이 이야기를 많이 이어지고,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이다. _ 9쪽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_409쪽

 

천 작가는 탁월한 입담의 소유자다. 말로는 져본적이 없을 것 같은, 말싸움의 지존이랄까! 고래가 그렇다. 무협지 같았다가, 역사물같았다가, 19금 에로물같았다가, 설화와 민담을 담은 고전같았다가…. 또 천 작가는 맛있는 작가다. 여기서 '맛이 있다'는 글의 곳곳에 엄마밥, 집밥, 화려한 진수성찬 같은 이야기들이 끝나는 듯 이어지고, 마치는 듯 연결된다.

<고래>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은 국밥집 노파, 그녀의 딸 애꾸, 금복, 그리고 금복의 딸 춘희이다. 하지만 그들과 연결된 지난한 삶의 인물들이 이리 저리 연결돼 등장한다. 어찌보면 다발성 주인공인 듯 싶게 서사적으로 묘사된다.'

고래의 첫 등장은 이렇다. '믈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쑥 솟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금복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압도되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_62쪽

책에는 수많은 법칙들이 등장한다. 일테면 소문의 법칙으로 시작해 이념의 법칙으로 끝이 난다. 법칙은 이런 것들이다. 아랫것의 법칙, 사랑의 법칙, 생식의 법칙, 화류계의 법칙, 의처증의 법칙, 거리의 법칙, 작살의 법칙, 거지의 법칙, 구라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자본의 법칙, 지식인의 법칙, 감방의 법칙, 독재의 법칙… 등

 

금복의 젊고 싱싱한 자궁은 이제 더 상한 사내의 유전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것은 생식의 법칙이었다. _76쪽

 

인물들의 연결은 서사가 되면서 또 인생이 되고, 회한이 되고, 고뇌가 되고, 좌절이 되고, 죽음이 되고, 과거가 됐다가 내일이 되고, 눈물이 되고, 아픔이 되고, 결국 우리가 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_238쪽

 

<고래>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뒤 부커 측과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정서인 한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서였다. "한이라는 거는 저희뿐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고 예를 들어서 아메리카 남부지방 그 목화밭에서 일하던 그때 그 하늘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한 보다 절대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고래> 안에는) 그런 슬픈 정서도 있지만, 또 에너제틱하고 또 명랑하고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그런 넘치는 에너지들도 그만큼 가지고 있다. 어떤 명랑한 성적 에너지 같은 것들도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아이뿐만 아니라 그녀가 알고 있던 사람들, 그녀가 겪은 일들, 언젠가 눈앞을 스쳐간 풍경들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벽돌 위에 그림을 그려 구워낸 다음 나란히 늘어놓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보는 동안만큼은 고통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벽돌 위에 점점 더 많은 기억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개망초와 뱀, 메뚜기와 잠자리, 고라니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에서부터 대장간의 모루, 벽돌을 실어 나르던 트럭 등 그녀의 인생을 스쳐간 온갖 물상들, 다방의 풍경과 평대역에서 날뛰던 점보의 모습 등 수많은 장면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_515쪽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최종 후보 6편을 발표할 때 고래를 이렇게 평했다. "2004년 출간된 <고래>는 이후 20여년 동안 한국 문학의 '모던 클래식'으로 간주됐다."며 "한국이 전근대에서 탈근대 사회로 급속히 이동하며 겪은 변화를 제조명하는 모험극이자 풍자극"이라고 했다.

장편소설 <고래>. 산골 소녀에서 작은 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 벽돌의 여왕으로 불리울 정도였던 벽돌 장인 춘희, 그녀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 작가의 이야기는 이러한 인물과 삶들을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간간이 엽기적으로 넘나드는 이야기꾼의 이야기같은 소설 <고래>.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소설이다, 천명관의 <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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