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만이라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순간의 바람이 따끔한 주사 바늘만큼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는 날씨다. 정신을 자극한 바람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간이 그렇다. 삶은 바람처럼 일방향이다. 삶에서 집착과 욕심은 아픈 인연일 뿐이다. 12월의 생각은 해마다 후회로 반복한다.
인생을 허투루 보내지 말라는 바람의 경고 속에서 한 해와의 이별은 아프기만 하다. 후회와 상처 없이 이별하는 법이 없다. 누구나 12월이 돼서야 시간을 살핀다. 하지만 굴곡과 굴레를 벗어나려는 헛발질만 할뿐이다. 눈꽃처럼 눈이 부실 만큼 이별을 잘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라키미 하루키는 갓구어낸 식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라고 했다. 둘둘 말아 반듯하게 접어둔 속옷을 볼 때도 행복하다고 그는,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그렇게 말했다.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서 행복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12월이 돼서야 작은 행복들마저 살피지 못했던, 그저 분주하고 쫓기는 삶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해인 수녀 시인의 행복비법은 자작시 〈행복의 얼굴〉에 잘 나타나 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법정 스님은 유리잔의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올라오는 고구마를 햇살이 좋은 창가에 놓고 바라보는 시간에 행복이 온다며, 그렇게 사는 일이 새삼스럽게 고맙다고 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작은 행복을 찾다 보면 함부로 살아버릴 수 없는 삶을 확인할 수 있다.
12월은 바깥 세상의 세모(歲暮) 풍경만큼 찬란한 지난 열한 달 삶의 통찰력을 해부하는 시간이다. 이인자 시인은 〈12월에 꿈꾸는 사랑〉에서 12월에는 예쁜 꽃씨 한 알을 가슴마다 심어두자고 했다.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두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 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두기로 해요.”
이 시에서 말하는 12월에 꿈꾸는 사랑은 바로 희망이다. 시인은 꽃씨 한 알을 마음과 가슴에 심어주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피어난 꽃 한 송이는 이해와 용서의 꽃이 될 수 있다. 그늘지고 힘겨운 이웃들에게 베풂이라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가슴 가슴마다 심어놓은 꽃씨는 천 송이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희망한다. 꽃을 피우는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라고 한다. 말로 하는 사랑은 하지말자고 한다. 함께 나누는 사랑을 위해 꽃씨를 심자고 한다. 12월에 꽃을 피우게 하는 땅은 바로 우리들의 가슴이다.
이채 시인은 〈12월의 노래〉를 시어로 구성지게 불렀다.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우리는 월동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시는 김장하는 겨울 풍경과 함께 자리한다. 시인은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12월에 월동준비를 강조한다. 진실보다는 헛말과 빈말이 가득했던 지난날은 잊어버리자고 말한다. 김장김치 속이 되어주는 마늘과 파, 생강으로 사랑의 양념을 만들자고 한다. 12월의 부스러기는 고작 며칠이다. 함께 있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김장독을 땅속에 묻고, 하늘을 보면 우리의 사랑도 김치처럼 제 맛이 들거라고 한다.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사랑도 제 맛이 들거라고 말하고 있다.
황지우 시인은 〈12월의 안부>를 물었다.
“전력을 다해 달리다가/ 잠시 쉬는 듯 뒤돌아보는데/ 세월은 그대로 흐르고 있네//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존재와 행동을 되짚어 보노라면/ 스스로 깨트려/ 작아져야 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네// 숱한 시간의 흐느낌/ 열두 굽이돌며 제 아픈 곳 닦아 줄/ 내일을 향해 가는 새 힘은/ 오직 새로운 길을 트는 일이라는/ 당부 한 마디// 12월은/ 자기가 가진 최상의/ 선물을 건네주리라 골똘하네.”
12월은 선물을 주고받는 시기이다. 전력 질주해 왔던 한해의 마지막 달 12월.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걸어왔던 길 위에 나라는 존재는 작다. 그러나 작고 아픈 존재를 닦아줘야 한다. 내일을 향한 새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최상의 선물을 건네줘야 한다. 12월의 해야 할 일이다.
12월이면 헛헛해지는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어진다. 함부로 살아버릴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유독 12월이면 생각이 깊어지고 숙연해진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는 여운이 더 깊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리라.
겨울나무처럼 몸에 걸친 무수한 잎들을 모두 뿌리치고 자기자신을 비우는 시기가 12월이다. 남해 염불암 주지 성전 스님은 인생의 시에 마지막에 써야 할 말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인생이 고맙다는 것이다. 〈고맙습니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있어 내 마음에 노을이 삽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햇살이, 달빛이 왜 낮은 곳을 향해 내리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이 있어 내 마음을 비워 바람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당신이 있어 서툰 글씨로 사랑의 일기를 씁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저녁 산길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12월은 감사의 달이다. 한 해 동안 살아온 자신을 비롯해 도움과 배려의 혜택을 건네준 누구에게나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성전 스님처럼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김종해 시인은 겨울 속에서 봄이 있다고 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에서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은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요/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12월만큼은 쫓기는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책망하기 보다는 감싸줘야 한다. 12월만이라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