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통 Mar 09. 2022

[계절 산문]을 읽고

 편안한 단어들, 좋은 글들이 가득한 숲과 같다

박준 시인은 50쇄 돌파 시집으로 유명하다. 스물 아홉살 때 펴 낸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가 그렇다.


그러나 정작 나는 시인을 잘 몰랐다. 지난해 5월 tvN 유퀴즈언더블록에 출연한 그가 눈에 띠었다. 당시 방송은 그를 문단의 아이돌이라고 소개했다. 2017년 발표한 산문도 20만 부를 찍었다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해 말 계절 산문이 나왔다. 어려운 책을 잡기 힘들어하는 나답게 책을 집어 들었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무거운 공기로부터 자신을 들뜨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가벼운 책읽기다. 어떤 때 시 같고, 어떤 때 산문 같은 글이다. 특히 시인을 글을 쓸 때 존댓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독자를 존중한다는 뜻이 아닐지라도 읽기에 무척 평온하다.


책 띠지에 나왔듯이 계절 인사를 나누는 책이다. 일월부 십이월까지, 세상과 자신과 주변과, 지인과, 이렇게 서로들한테 일어나는 우리의 일들을 편안한 글로, 마치 물건을 사면 담아주는 검정 비닐봉지 처럼 평범하기 그지 없다.


두 개의 글을 옮겨 본다.


무렵_ 81쪽


나 앞머리 자른 거 모르겠어?

오늘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잘 어울려

야, 사람이 말할 때 좀 진심을 담아서 해야지

사실 말하기 전까지는 진심이었어


어떤 셈법_118쪽


네 형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내가 칠만 원을 줄게. 너는 오만 원만 내. 그러면 십이만 원이 되잖아. 우리 이 돈으로 기름 가득 넣고 삼척에 다녀오는 거야.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시를 쓰는 것은 길건 짧건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의 과정이다. 그만큼 글 뿐만아니라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감성은 마음에서 나올지라도 글은 태도attitude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강박을 벗어난 태도로 글을 쓴다고 느꼈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독자들이 내 시집을 사뿐히 즈려밟고 넘어가는” 것. “제 시를 발판으로 더 많은 시의 아름다움으로 걸어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숲에 들어갈 때 처음 만나는 나무처럼.”


계절 산문은 편안한 단어들, 좋은 글들이 가득한 숲과 같다. 책을 덮을 때면 마음에 아로마향이 배이는 느낌이 든다.


(*제가 쓰는 서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책을 홍보하는 목적이 아닌 읽고 나서 저의 소감을, 가급적 긍정적인 관점으로 적은 것입니다. 저의 서평을 읽고 책의 구매를 결정하시면 자칫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