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tattoola Sep 30. 2024

눈치 보는 새우 2

새우만의 생존법

      타투샵에서 있는 시간이 점점 살얼음판 같이 느껴졌다. 극적으로 화합이 이루어지길 바랐지만, 유감스럽게도 샵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한번 생긴 감정의 균열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사이가 좋지 않은 타투이스트들 중 한쪽의 조언을 듣고 내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다른 한쪽이 대놓고 눈치를 주거나 지적하는 불편한 상황이 잦아졌다. 때로는 괜한 시비가 걸리기도 하고, 솔직히 기분 상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기엔 타투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하루빨리 타투를 배워 내 밥벌이나 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양쪽 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갔기에,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며 묵묵히 입을 닫고 연습에 매진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입을 닫으면 중간은 간다는 명언을 떠올리면서…


    이 난감한 경험을 통해, 미국 타투샵에서 일하면서 한국 문화에 더 익숙한 외국인인 내가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또 타투샵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은 굉장히 자유로운 나라지만, 타투계에서는 연차가 오래된 타투이스트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그들만의 수직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한 사람의 멘토 아래에서 몇 년간 일을 도와가며 기술을 배우는 도제 시스템은, 제자를 이끌어 주는 이전 세대의 타투이스트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그들의 타투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이다. 이런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처럼 독학하거나,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며 단기간에 타투를 시작하게 된 새로운 세대의 어린 타투이스트들은, 올드스쿨 타투이스트들이 보기엔 편법처럼 보일 수 있었고, 그들이 지켜온 타투 문화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걸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나 기술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는 불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선을 가진 파인라인 타투에 매료되었는데, 이미 설명했듯이 내가 일하던 타투샵에서 그 스타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정보는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었고 또 정확하지 않았다.


“한번 쪽팔리고 마는 거지 뭐. 답장 오면 이득, 안 와도 손해는 없는 거다.”


    사실 믿기 어렵겠지만, 실생활에서 나는 남들보다 수줍음이 많고, 대인관계를 하기보단 피하는 비사교적인 스타일이다. 평소에도 없는 붙임성을 쥐어짜 사회생활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장점은,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끝장을 보는 불도저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처음 샵을 알아볼 때 거절의 쓴맛을 여러 번 맛봤으므로 더는 무서울 게 없었다. 답장이 안 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SNS에서 본 기상천외한 기술을 가진 파인라인 전문 타투이스트분들께 용기를 내어 직접 연락하고, 막히는 부분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멋진 작품이 보이는 족족, 작품에 따라 다른 질문들을 수없이 보냈다. (이상한 여자라 여겨져도 정말 할 말이 없다. 그 정도로 절실했다.)


    물론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귀중한 노하우를 나눠주신 감사한 분들도 가끔 계셨다. 그 답변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감사와 존경을 담아 그 답변들을 꼼꼼히 바인더에 정리해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중요한 보물 1호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바인더. 책 한 권의 분량이다.

내가 만약 독학을 해보지 않았다면, 지식을 나눠 받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마음 깊은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본인이 아는 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기까지, 그 사람은 아마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한 고생을 하며 연습과 경험을 통해 그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을 거란 걸... 지금도 힘들어질 때면 이 바인더를 보며 감사함을 되새긴다. 


    그렇게 하나둘씩 보물처럼 모은 정보를 열심히 기록하고 연구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손님이 점차 오시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돈도 돈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진짜 살에 연습하고 싶어 눈에 불을 켠 상황이었는데, 고맙게도 지인들이 (이 즈음에 조쉬의 타투도 고쳐주고 새로운 타투도 몇 가지 해주게 되었다. 용서받아 정말 다행이다.)  종종 나를 믿고 타투를 부탁해 왔기에 다양한 무료 연습과 손님 받기를 계속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비록 힘든 시기였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며, 안갯속에 가려진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윤곽을 잡아가려 노력했다.


이전 08화 눈치 보는 새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