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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tattoola Sep 28. 2024

눈치 보는 새우 1

파벌싸움

    그 당시, 아직 나만의 샵을 차릴 실력도, 경력도 부족했으면서 맹랑하게 미래의 독립을 꿈꿨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뒤처진 것 같아 괴로웠던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하루빨리 기술을 익혀 타투이스트로서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컸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서 효율을 따져가며 일해야 했기 때문에… 마치 천리길을 가야 하는데 출발선에서 걸음마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일주일에 고작 몇 번, 그것도 타투이스트들이 손님이 있을 때만 옆에서 타투를 볼 수 있었고, 그 몇 시간 외에는 청소를 하거나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하느라 내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보통 누군가의 apprentice(제자)라면 한 사람의 멘토에게 그 사람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받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명에게 각기 다른 조언을 듣게 되어 그걸 직접 연습해 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 독학보다는 나았다. 독학은 뭘 시도해야 할지조차 알기 어렵다.)


    한 아티스트는 타투 머신을 90도의 각도로 잡고 꼭 아래에서 위로 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고, 다른 아티스트는 연필 잡듯 머신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그으라고 했다. 이것만 들어도 얼마나 헷갈리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그냥 내가 편한 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같은 샵의 타투이스트들이 서로 정반대의 조언을 해주었을 땐, 누구의 조언을 따라야 할지 어찌나 난감하던지... 소위 선배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때도 많았다. 사회 속 모든 단체 생활이 그러하듯, 그 작은 타투샵에서도 파벌 싸움이 존재했으니까.


    1950~70년대부터 활동하던 미국의 잔뼈 굵은 타투이스트들은 보통 히피, 바이커, 록밴드 등 반항과 비주류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대표해 왔는데, 아티스트들의 자부심과 이런 문화가 합쳐져 약간 거친 에티튜드를 가진 베테랑 타투이스트들이 많았다. 아마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의 쿨함과 반항적인 이미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 거침없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베테랑 타투이스트들에게, 섬세하고 작은 파인라인 타투의 유행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고 대표하는 “스크래처”, “로터리 작업자”, 나 같은 “밀레니얼”들도 마찬가지였다. (타투의 기본이라 불리는 코일 머신 사용법도 모르는 신세대 작업자들을 비꼬아 로터리 작업자라고 불렀다. 스크래처는 타투 바늘의 올바른 깊이를 알지 못해 피부 표면에 얕은 상처를 낸다는 뜻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보 타투이스트를 얕잡아 부르는 미국 타투계의 은어이다.)


    내가 일하던 그 당시만 해도, 새로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베테랑 타투이스트들 사이에서는 싱글 니들 타투라는 것은 몇 년 후엔 피부에서 퍼지거나 사라질 말도 안 되는 눈속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싱글니들만을 (가장 작은 사이즈의 바늘, 단 하나의 바늘만 사용한다.) 사용해서 어떻게 작업하냐는 나의 질문에, 베테랑 타투이스트들은, “엉터리 같은 소리야! 그건 싱글 니들이 아니고 3 사이즈 바늘에 블랙잉크 세 방울 정도를 물과 희석해서 쓰는 걸 거야. 나중엔 다 퍼져서 알아볼 수도 없을 거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작업한 싱글니들 타투,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다.


    사실 파인라인 타투 즉, 단순히 얇은 선 타투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싱글니들 하나만 이용한 단독적인 스타일이 만들어져 큰 유행이 된 지금보다 훨씬 이전인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다양한 스타일 속에 쓰이고 있었다. 다만 내가 일을 하던 그 당시만 해도 최근의 유행처럼 정교하고, 단일 바늘로만 가능할 정도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타투 디자인은 지금처럼 평범한 로컬 타투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SNS의 발달로 손님들은 점차 최신 유행하는 싱글니들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타투이스트를 찾기 시작했고, 여러 명의 타투이스트가 오매불망 손님을 기다리는 샵의 워크인 상황에서는 얇고 작은 타투를 하는 파인라인 타투이스트가 비교적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타투를 처음 접하는 손님들 입장에서는 보다 작고 귀여운 타투가 덜 무섭고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워크인 손님이 오셔서 작업할 타투이스트를 간택하는 그 순간엔, 샵에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돈과 피가 튀기는 경쟁이었다!


    그 당시 샵에서 일하던 파인라인 타투이스트는 영어가 편하지 않은 분이었는데,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와, 파인라인 타투를 향한 인식, 수익의 차이, 세대 차이, 베테랑 타투이스트들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타투 씬이나 업계 선배에 대한 존경심 등 여러 가지 요소와 각 아티스트들의 성향 차이가 아티스트들을 신, 구 세력으로 나누어지게 해 그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점차 깊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껴있는 불쌍한 나의 처지는 바로 고래들 사이에서 바삐 눈치 보는 새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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