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마인드와 일에 임하는 자세
타투샵 사장님이 타투이스트의 기본을 알려주셨다면, 이번에 이야기할 또 다른 사장님은 나에게 서비스 마인드가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멋진 미소를 지니신 이 한국인 사장님을 직원들은 조 사장님이라 불렀다. 조 사장님은 한국의 옛 영화관인 단성사를 모티브로 한 호프집을 운영하시는데, 이곳은 현재도 성업 중으로, 한국 음식을 팔지만 워낙 유명해 외국 손님이 주를 이룬다. 이곳은 대학 졸업 후 계속 미술 선생님이나 직장생활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에겐 나름 역사적인 곳이다. 타투이스트가 되기 전 먼저 일했던 곳이고,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일을 배운 곳이다. 그 전의 직장 생활은 생각도 안 날 만큼 어찌나 매섭게 일을 배웠는지 아직도 많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게 메뉴가 백여 가지나 되는 곳인데 무서운 매니저는 나에게 이 모든 걸 이틀 안에 다 외워 오라고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원래 일주일을 준다는데 뭔가 첫인상부터 잘못 보였는지 매니저가 텃세를 부린 건가 싶다.) 주문은 영어로 받되 주방에 오더는 한국어로 적어야 하니 배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잘못 적기라도 하면 주방에서는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지고 매니저는 욕을 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반질반질한 오래된 나무 카운터 위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매니저는 항상 시계를 주시하며 누가 늦는지 확인하곤 했다. 한 번은 정말 딱 한 번 1분 지각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살아생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쌍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얼굴에서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창피하고 어찌나 서럽던지. 하지만 한편으론 남의 돈 받고 하는 사회생활에서는 1분 때문에 이렇게 욕을 먹을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도 있었다. 그 후에는 절대 지각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경험이다. 물렁물렁했던 나에게는 정말 가혹한 시간들이었지만 발바닥에 매일 물집이 잡히게 뛰어다녔던 그곳, 집에 돌아와서는 녹초가 되어 단잠에 빠졌던, 단성사는 내 이십 대의 축약본 같은 곳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출근하셨던 조 사장님은 흡사 호랑이 같은 분이셨는데, 기백이랄까? 말씀 하나하나에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치시던 분이었다. (몸집도 크신 분이라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일이 끝나고 마감을 할 때 사장님께서 직원들에게 맥주를 사주실 때가 있었는데, 나무 테이블에 다 같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사장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때 사장님은 어린 시절 다른 나라에서 일을 배우며 고생하셨던 이야기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담백하게 해 주셨다.
“난 손님이 왼쪽 뺨을 치면 오른쪽 뺨도 내밀었다.
남의 돈 주머니에 넣겠다는 사람이 자존심 챙기면서 일할 수 있어?”
듣고 있던 직원들의 눈이 동그래지자, 조 사장님은 웃으면서 덧붙이셨다. 나중에 너희가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손님을 대할 때는 이런 마인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직원 입장에서는 가혹한 말일 수 있지만, 사장 입장에서는 옳은 말이다. 부당한 손님에게는 나름의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일단 시작은 죄송하다는 말로 해야 한다. 직원은 손님과 싸우고 관두면 그만이지만, 사장은 손해를 책임져야만 하는 자리니까. 아마도 사장님은 직원 시절부터 사장의 마인드로 손님들을 대하셨던 게 아닐까? 나의 기분보다는 가게의 손익을 먼저 따졌던 직원. 마인드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다
“한번 일을 배울 때는 제대로 배워라. 나중에 너희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진 아무도 몰라.”
물론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음식 장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나의 요리 실력은 재앙 그 자체다.) 그때 사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남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설사 내가 미래에 다신 안 할 것 같은 일이라도 모든 걸 적어서 정리해 두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이건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나의 장점 중 하나가 되었고, 나에게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