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으면 지는 거야.
전편에 적은 조쉬의 이야기를 읽은 초보 타투이스트라면 내 경험담 속 공포가 좀 더 생생히 다가올 것이다. 분명 타투를 하는 우리 모두가 겪는 혹은 겪었던 감정일 테니까. 손에 머신을 잡고 내가 대체 지금 뭘 하는 건지 모르겠는 암담한 기분과 두려움을 맛보고, 최악의 결과까지 만들어버리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만둘 게 아니라면 난 제대로 배워야만 해.’
혼자 하는 독학에 한계를 여실히 느낀 날들이었다.
몇 번의 통화와 낙담을 했을까?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는 도저히 타투샵을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알음알음 수소문 끝에 집에서 차로 30분이나 넘게 떨어진 로컬 타투샵과 겨우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하필 그즈음에 사고로 차가 폐차되었기 때문에 그 거리를 택시로 다녀야 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어쨌든 날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타투샵으로서는 드물게 하얀 광택의 바닥이 햇빛에 반짝이던 예쁜 가게였는데, 처음 사장님을 뵙던 날의 떨리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20년 이상 샵을 운영해 온 여자 사장님이었다. 미인이셨지만 첫인상이 깐깐해 보이던 사장님은 청소건 뭐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테니 작업하는 것만 보게 해 달라던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타투 경력도 전무하던 나를 흔쾌히 채용해 주셨다. 물론 그 당시 쓰리잡을 뛰던 나는 매일 샵에 나올 수가 없어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한 아티스트에 소속된 일반적인 apprentice (제자)는 될 수 없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샵에 나와 청소를 하고 다른 아티스트들을 도와 잡일거리를 하며 그들이 타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손님이 없었으니 돈은 벌 순 없는 시간이었지만 왕복 택시비와 타투이스트들에게 잘 보이려는 커피값 지출 정도로 타투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다니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혼자 아무도 없는 샵의 자물쇠를 열고 아티스트들이 출근하기 전 깨끗하게 하얀 바닥 청소를 하며 언젠가 나도 이런 샵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종종 하곤 했다.
대부분의 샵의 타투이스트들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뭐라도 배우려는 내가 안쓰럽고 기특했는지 고맙게도 간간히 이것저것 본인들의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십 년의 경험을 가진 로컬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내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 당시 그 가게에는 20년 이상의 오래된 타투 경력을 가진 타투이스트들이 세 명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미국에서 유학생으로서 얌전히 책만 들고 학교만 다닌 내가 (술은 많이 마셨지만 나름 모범생이었다.) 모르는 거친 미국 타투업계의 생생한 역사와 무용담을 마치 해적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곤 했다. 베테랑 타투이스트들은 엄했지만,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날것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매직펜 안의 잉크를 빼고 타투 잉크를 주입해 몰래 전달받아 다른 수감자들에게 핸드포크 (바늘을 손으로 직접 찔러 주입하는 방식) 타투를 해주었던 이야기, 강아지의 뼈를 곱게 갈아 잉크에 넣어 강아지를 기리는 타투를 주인에게 해 준 이야기, 다양한 바늘이 없던 시절 직접 바늘을 용접하고 잉크를 만들어 쓰던 이야기, 타투받다가 기절한 사람을 깨우는 방법 같은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었다. 손님도 없고 화장실 청소 같은 잡일만 하는 나였지만 그들과 한 테이블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이미 타투업계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 인정받은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엄하고 거칠지만, 정도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