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의 위생
가끔 예약이 있을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타투 용품들을 몽땅 나의 작은 회색 캐리어에 넣고 출근을 하고, 끝나면 허겁지겁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하러 뛰어갔던, 매일 정신없는 사회 초년생인 그때에 난 참 좋은 사장님들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사회에 나와 남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자신의 손해 없이 비즈니스 운영 방식을 직간접적으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끝내주는 기회다. 그게 설사 당장은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처럼 느껴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상사가 화장실 청소를 시켰을 때, 단순히 불평하며 대충 해치우면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시간이 허비된다. 그러나 이 일을 미래의 있을 내 샵 운영의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청소한다면, 청소 노하우뿐만 아니라 상사의 신뢰도 얻게 된다. 폼은 좀 안 나지만 뭐 어때? 화장실 청소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보단 낫다.
그렇다면 사장님의 신뢰를 얻는 것이 왜 중요할까? 신뢰는 더 많은 일, 특히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신뢰를 쌓고, 그 신뢰는 결국 더 큰 책임과 중요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을 졸업 후 미국에서 타투이스트가 되어 나의 샵을 차리기까지 참 많은 일을 여러 직종의 사장님들 아래에서 배웠는데, 각각의 사장님들에게서 중요하게 여기셨던 "기본"들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타투샵 사장님 밑에서 일하며 얻은 가장 큰 자산은 타투이스트로서의 기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기본은 무엇일까? 출중한 실력도 당연히 너무나 중요하지만 제일 기본은 안전이다. 살에 상처를 내어 잉크를 주입하기 때문에 얼마나 안전하게 작업하느냐는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위생은 손님 입장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오토클레이브를 사용해 그립 소독과 사용한 각종 툴들을 고압증기멸균 소독하는 법, 사용하는 모든 장비들이 꼼꼼하게 플라스틱으로 감싸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작업을 할 땐 눈에 보이지 않는 피나 잉크가 튀어 퍼져 있으니 꼭 후에 정해진 소독제를 사용해 그다음 손님과 타투이스트 자신의 안전을 위해 꼼꼼하게 청소해야 하는 것, (나는 여기에 한 단계 더 추가해 알코올로 모든 물품을 다시 닦아 마무리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는 법, 청소의 순서 등 이때 배운 위생 개념은 지금까지도 내게 타투이스트로서 큰 자부심을 주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많은 샵을 방문하고 타투이스트들과 교류하며 처음 위생을 알려준 샵 사장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위생을 지키셨던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 존경심을 가질 수 있었다.
타투샵 사장님은 종종 타투가 끝난 후 나에게 뒷정리 청소와 소독을 맡기셨는데, 내가 꼼꼼하게 순서대로 청소를 하는지 옆에 서서 지켜봐 주셨다.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교차 감염의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게의 사장님이 솔선수범하며 위생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그 샵에서 일하는 다른 아티스트들도 거기에 맞춰 더욱 위생을 신경 쓰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뉴스나 매년 치는 위생 시험에서 (내가 사는 지역인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매년마다 갱신 위생 시험을 봐야 한다.) 항상 나오는 교차 감염에 실패해 타투이스트가 병에 노출될 확률이라던가, 그로 인해 걸릴 수 있는 다양한 질병에 대해 배워야 했던 나에겐 사장님의 이런 철두철미한 위생 개념이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