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말라 우물을 팠다.
그동안 내가 거쳐온 직장과 아르바이트가 여러 곳이고, 인연이 닿은 상사들도 많았다. 그런데 왜 유독 타투샵 사장님과 조 사장님 두 분이 기억에 남을까? 두 분 사장님께는 훌륭한 인품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잘 활용하신다는 점이다.
나는 조 사장님의 “한 번 일을 배울 때는 제대로 배워라”라는 말씀을 듣고 난 뒤, 가게에서 배운 모든 것을 문서로 정리해 두기 시작했다. (트레이닝 기간이 유독 힘들었고, 두 번 물어보기가 눈치 보여서, 사수의 허락을 받아 트레이닝 전 과정을 녹음해 문서로 정리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결과적으로 약 9페이지에 달하는 워드 문서가 완성되었다. 사수에게 여러 번 질문하지 않아도 이 문서만 읽으면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끔 세세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나중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을 때, 이 문서가 트레이닝 매뉴얼로 잘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훗날, 일을 그만두기 전 이 문서를 조 사장님께 드리자,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읽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꼼꼼하게 잘 정리해 줘서 좋네. 사실 메뉴판이 오래돼서 외국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새로운 영문 메뉴판과 설명을 다시 만들고 싶은데,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빙 일을 그만두기 전에 가게 메뉴판을 리뉴얼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조 사장님이 기회를 주신 덕분에,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매뉴얼 제작을 경험했고, 이를 포트폴리오에 넣어 나중에 다른 음식점들의 메뉴 제작 또한 의뢰받아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다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일하게 된 타투샵에서도 청소만 도맡아 하다가, 내가 외주로 디자인 작업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타투샵 사장님도 명함 제작 등 여러 가지 일을 맡기셨으니 결국, "제대로 배우고자 했던 노력" 덕분에 여러 기회의 문이 열리게 된 셈이다.
특히 타투샵 사장님께는 명함 제작이나 자잘한 디자인을 무료로 해드리며 샵 오픈과 운영에 필요한 세세한 노하우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타투샵을 오픈하기 위한 서류와 검사 과정 등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며 미리 배울 수 있었다. 샵의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나는 그 당시 수입의 50%를 커미션으로 가져가는 샵의 조건이 버겁고, 좀 더 나의 스타일의 타투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내심 독립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50%는 미국 로컬 샵의 통상적 커미션율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사장님이 주신 금 같은 정보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투샵 사장님께서는 아마 나의 짧은 경력으로 내가 이렇게 빨리 독립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않으신 것 같다.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아 앞으로 사장님께 자랑스러운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사장님은 놀라신 눈치셨으니. 하지만 6개월이 지나 내가 나의 샵을 오픈한다고 연락드렸을 때, (그땐 이미 그만두고 다른 곳에 베드 렌트를 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성장을 지켜보신 타투샵 사장님은 더 이상 놀라지 않으셨다.
만약 내가 화장실 청소를 대충 하거나 항상 지각했다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장님들 역시 작은 일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를 신뢰하지 못했을 테니까. 결국,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사장님들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려낸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