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여태까지 겪어 온 나의 경험들을 이렇게 글로 요약해 풀어내니, 여러 가지 굴곡은 있었어도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마치 순풍에 항해하는 보트 같이 순조로워만 보일 것 같다. 하지만 고래싸움에 시달리며 손님 유치에 힘쓰는 동안, 당연하게도 쉬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아르바이트들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는, 이대로 자리를 못 잡고 어중간히 시간낭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덮쳐오는 불안한 마음이 날 괴롭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기죽지 않으려 새벽까지 혼자 연습을 했다. 난 하루빨리 독립을 하기 위해 작품 포트폴리오는 물론, 손님층의 기반을 다져야 했는데 이 시기의 내가 느낀 미국의 타투샵은 마치 하루하루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 그 자체였다. 다 적어내려면 끝도 없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 몇 분이 계신다.
앞서 설명했듯, 내가 일하던 타투샵도 다른 샵들처럼 워크인 손님을 받았다. 워크인의 단점이라면, 누가 손님으로 올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혼자 일할 때 워크인 손님이 오면 내가 무조건 받아야 하지만, 직원이 많은 타투샵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비교적 평범한 손님일 때는 모두가 서로 먼저 받으려고 눈에 불을 켰지만, 꺼려지는 손님일 경우에는 서로 미루는 분위기가 있었다. 결국 그런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소위 까라면 까던 신참인 나에게 돌아왔다.
출산을 8번이나 하셔서 스스로에게 작고 디테일한 트로피 타투를 선물로 새겨주고 싶다고 하신 흑인 손님이 오셨는데, 하필이면 부위가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생각조차 안 했던 생식기 쪽의 특수 부위였다. 출산을 여러 번 하셔서 하반신의 피부가 엄청 늘어져 있었고, 체격 또한 많이 크신 분이었다. 게다가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이게 쉽지 않을 작업이 될 거란 건 얼어붙은 분위기와 타투이스트들의 굳어 있는 표정으로 이미 알 수 있었다. 내 샵이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문의는 정중히 거절할 수 있지만 남의 샵에 커미션을 주는 입장이라면 손님을 돌려보내는 것은 사장님의 손해와 직결되기 때문에 “못한다”는 말은 금기어였다. 복잡한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타투를 시작하는데 여러 번의 출산으로 늘어진 살에 손이 묻혀 피부 텐션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타투를 할 때에는 피부를 늘려 팽팽한 텐션을 주고 작업해야 한다. 피부 저항이 적은 얇은 바늘을 사용하는 파인라인 타투는 특히나 더.) 결국 나는 몸 전체와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써서 아랫배를 밀어 올려 텐션을 잡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고작 몇 분이 지나자 내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운동 좀 해 놓을걸…’
게다가 엄청 어두운 피부에 바셀린을 바르니 빛이 반사되어 스텐실이 전혀 보이지 않아, 생전 처음 보는 손님의 사타구니에 거의 머리를 처박으며 작업을 해야 했는데 이게 또 여러모로 고역이었다. 치열한 사투 끝에 겨우 작업을 마치고 나서 거의 탈진 상태인 몸을 부여잡고 덜덜거리는 손으로 계산을 도와드렸는데, 그날 내가 손님의 생식기에 코를 대고 약 서너 시간 정도를 버틴 타투 비용 180불은 모두 동전이었다. (정말 일반적이진 않지만 손님이 일부러 날 기분 나쁘게 하려 하신 게 아니고 정말 동전을 많이 들고 다니시는… 특이한 분이셨다.)
샵의 모두는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는 너무 지쳐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모든 게 끝났다는 게 중요했다. 기적처럼 청소를 끝낸 후 타투 베드에 누워 가게 천장을 올려다보니 하얀색이던 천장이 노랗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