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도이
물론 어느 직종이나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특히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자영업자나 서비스업은 그런 경우가 더욱 많다. 독특한 사람이 고작 한두 명이었을까? 하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되는 게 또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단성사 사장님, 타투샵 사장님같이 갓 성인으로 사회에 나서던 나에게 크게 가르침을 주신 분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시기에 또 한 명, 나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멘토 한 분과 인연이 닿게 된다.
타투이스트 도이. 한국 파인라인 타투의 마스터. 한국에서 타투계에 몸담았다 하면 일단 모두가 알고 있는 분. 그동안 연예인들의 타투를 많이 해주신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도이 님이 바로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타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분이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DM 답장을 받았을 때, 정말 꿈만 같았다. 아무 기대 없이 보낸 DM이었는데, 이렇게 친절한 답장을 받다니... 내친김에 엘에이에 오시게 되면 꼭 타투를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침 다음 달에 잠시 오신다고 하셔서, 무슨 타투를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떨리는 마음으로 서둘러 예약을 잡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입시과외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비교적 보수적이고 자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동양계 부모님들과 주로 일해 왔다. 그래서 눈에 띄는 부위에 타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타투 없는 맨 팔을 고수해 왔지만... (미국 타투샵에서는 보통 타투가 없는 타투이스트를 반기지 않는다. 내 몸 보이는 곳에 받은 타투로 내가 일에 어느 정도 진심인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이 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대한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받아서 그분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머리에 새겨 넣을 작정이었다.
무슨 타투를 할까 고민하던 나는 내가 가장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하던 Times New Roman 폰트를 골라, (사실 지금도 싫어한다.) 작업자의 시선에선 좌우 반전이 된 상태로, 또 남이 아닌 내가 봤을 때 읽을 수 있도록 상하 반전이 된 레터링 타투를 받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만약 손님이 이런 타투를 나에게 해달라고 한다면 위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는 양심 없는 요구였다. 게다가 정자 폰트는 선이 0.1mm만 벗어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바로 실수가 눈에 띄기 때문에, 작업자가 똑바로 볼 수 없는 좌우 반전이나 상하 반전은 특히나 더 어려웠다. 그것뿐인가? 같은 업계인 타투를 하는 사람이 코앞에서 나의 바늘을 지켜보는 압박감은 또 어떤가? 일부러 도이 님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결코 없었지만 쉽게 뵐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어려운 부탁을 드리게 되었다.
드디어 마치 연예인 팬 사인회에 가는 심정으로 도이 님을 찾아뵌 날, 햇살 좋은 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편안히 반겨주셨던 도이 님 덕분에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진정되고 단숨에 긴장이 풀렸다. 편안한 옷차림에 미소로 반겨주시던 도이 님의 모습은 인터뷰 사진에서만 뵙던 분이라 신기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는데 조용조용한 말투로 내가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주시던 게 기억이 난다. 태도나 말투에 상대를 담백하게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깊게 배어있는 분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사실 나는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어서, 마치 잡지 인터뷰를 하듯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적어놓은 질문을 불도저처럼 퍼붓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볼 수 없을 도이 님과의 이 독대가 끝나기 전에 소위 말해 뽕을 뽑아야 했으니까. 도이 님은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후 상세히 답변해 주셨다.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오늘 받을 타투와는 전혀 상관없는 뻔뻔한 질문 폭탄에 기꺼이 긴 시간을 내어 답해주신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적는데도 그때 패기 넘치던 상황이 떠올라 몹시 창피하고 괴롭다.
수확이 가득했던 인터뷰(?)가 끝나고 드디어 코앞에서 지켜보게 된 도이 님의 타투 기술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주 열심히 봐서 기술을 훔치고 싶었던 나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지만, 그건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 아니었다. 눈으로는 알겠는데 손이 못 따라가는, 말 그대로 격의 차이가 느껴졌던, 미세하고 대단한 기술이었다. 도이 님은 별다를 게 없어서 부끄럽다고 웃으셨지만 나에겐 마치 밥 아저씨의 강의를 보는 것과 같았다. "참 쉽죠?" 이런 느낌이랄까. 침이 떨어질 정도로 집중하며 봤지만 순식간이었다. 도이 님이 찍고 싶으시면 카메라로 다 찍으시라고, 집에 가셔서 어떻게 하는지 보셔도 괜찮다고 감사한 배려까지 해주셨지만 잠깐 봐서 이 대단한 기술을 내가 따라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조금만 더 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잘하는 사람의 기술은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공부가 된다. 미국에 사는 내가 한국에 사는 대가의 실력을 대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크게 아쉬워하는 내 모습을 보던 도이 님이 제안을 해주셨다. 내일 만약 시간이 되면 하루 종일 곁에서 본인 작업을 보시겠냐는 꿀 같은 제안을.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할렐루야. 그때 도이 님 등 뒤에서 하얀 날개가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