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tattoola Oct 27. 2024

타투이스트들의 타투이스트 2

시야와 영감

    다행히 첫날 질문 폭탄 세례를 한 뒤라, 두 번째 만남은 비교적 좀 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뵐 수 있었다. 이번 미국 일정에서, 도이 님은 예약공지를 올리지 않으시고 소수의 손님만 비공개로 받고 계셨는데 그 점이 의아해 여쭤보니 따로 중요한 손님의 요청에 엘에이에 오셨다고 했다. 대체 누구길래 도이 님을 따로 먼 외국까지 섭외할 수 있었던 걸까?


"아! 사실 빵형 타투해 드리러 왔어요~"


    사실 너무 캐주얼하게 말씀하셔서 그 빵형이 브래드피트를 말하는지 미처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 화들짝 놀랐다. 도이 님은 전혀 긴장이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러게요. 저도 너무 떨리고 기뻐요."라고 웃기만 하셨다. 브래드피트의 저택에 초대받아 타투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로 인해 보통 샵에 구비되어 있을 물품을 전부 다 따로 구매하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침대까지도. 너무 평온히 말씀하셔서 설명하시는 그 사람이 할리우드의 초대형 거물이 맞나 싶어 헷갈렸다. 나라면 떨려서 타투머신을 손에 든 채 기절할지도 모른다.


    대체 도이 님 같은 작업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미 국내외 유명인들을 많이 타투해 보셨기 때문에 담대하신 걸까? (나중에 몇 년째 뵈면서 느낀 건데 원래가 묘하게 느긋하신 성격이실지도...) 그리고 어떻게 타투 풋내기인 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도움과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을까? 오래전부터 타투계에 몸담은 이분은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앞으로 어떤 목표를 품고 계실지도 궁금했다. 나에게 있어 도이 님은 타투이스트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이루신 분이기 때문에, 과연 이 이상의 목표가 있을까 싶었다. 손님이 많은 타투이스트를 넘어 지금 내 시야로는 닿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세계를 보시고 계신 걸까? 첫날에는 도이 님의 기술적인 면에 집중하며 대화를 나눴는데 둘째 날에는 좀 더 심층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옆에 앉아 끊임없이 질문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내게 스승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내가 지나치게 솔직하게 썼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상황에 맞춰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싶어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작업자가 되고 싶고, 타투이스트로서 무슨 일을 이뤄내고 싶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냥 빨리 손님이 많은, 잘 나가는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이 대화는 정말 특별했는데, 앞으로 내가 있을 이 업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사람으로 끝맺음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국 타투의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대체 왜 그게 도이 님에게 중요한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손님이 많고 이름이 알려진 작업자. 해외에서는 더 크나큰 명성을 얻은 사람이 한국의 타투 합법화에 굳이 앞장서서 불이익을 당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나중에 이 업계를 떠날 때요, 누구나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몸 담았던 곳을 떠날 땐 박수받으며 떠나고 싶잖아요. 더 안 좋게 되길 바라며 떠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려면 이 업계 자체가 인정받아야 하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정말 애정이 있으니까 바꾸고 싶어요. 제가 떠난 후에도 다른 분들이 이 직업을 박수받으며 이어갈 수 있도록."


    너무나 군더더기 없고 명쾌한 이유여서 그걸 듣는 순간에 나도 지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타투 합법화를. 나도 결국 해외에서 작업하는 한국인 작업자니까. 이후에도 도이 님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도이 님과의 대화는 항상 무언가 마음에 깊게 남는다. 그래, 한국인 타투이스트들의 기술을 브랜드화하고 목소리를 높이신 거였구나. 단순한 개인의 돈벌이를 넘어서 목표의식이 있으셨구나... 그렇다면 나는? 내 타투 커리어에서 내가 남기고 싶은 건 뭐지? 


"도이 님, 저 올해 안으로 저의 샵을 낼 거예요."


    모르겠다. 왜 그 순간 그런 말이 불쑥 나왔는지는. 도이 님에게 영감을 받아서 나도 뭔가 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 계획도 없는 주제에 말부터 뱉다니. 하지만 이상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해낼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나에게 기꺼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 도이 님에게 말만 뱉는 실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이제는 해내야만 할 것이다. 아마 나 자신에 대한 각오였던 거 같다. 이제 진짜 행동에 옮길 때라고. 뱉었으니 보여주라고.

이후 생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한국의 타투 합법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이전 12화 타투이스트들의 타투이스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