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픈?
도이 님과의 만남 이후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바로 다음 날부터 샵을 열기 위한 적당한 가게 자리를 찾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올해 안에 오픈하겠다고 뱉은 말이 있어 번복할 수도 없었고, 도이 님이 한국에 가시면서 샵을 오픈하면 쓰라며 무려 브래드 피트가 작업을 받았던 침대를 선물로 주셔서 (그 침대는 아직도 샵의 보물이다), 빨리 샵을 열어 그 침대를 들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역시 넌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고도 싶었다.
몇 주 동안 적당한 렌트비의 공간을 몰아서 본 끝에, 드디어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 1층에 작은 공간을 찾았다. 클래식한 느낌의 가게로 커다란 창이 있고, 천장이 높아 답답하지 않았다. 가게 안에는 작은 방 두 개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지만, 벽을 허물어 작은 공간을 넓게 사용할 계획이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중요한 서류들을 미리 접수해 공사 완료 후 바로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부동산 계약부터 헬스 퍼밋, 비즈니스 퍼밋 등 처리해야 할 법적 서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때만큼은 몸이 두 개였으면 싶었다. 공부만 하며 살았지 이런 일들은 어른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하나하나 일을 해결해 나가는 어른이 된 내가 있었다. 뜻이 있다면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밀어붙였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예산도 늘어갔다. 그래도 감사한 주변 사람들과 사랑하는 남편의 큰 지지 덕분에 비교적 따뜻했던 2019년 12월, 도이 님에게 약속한 바로 그해에 샵을 계약하게 되었다.
정식 오픈은 3월쯤 될 예정이어서, 그동안 인테리어나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어떤 샵을 만들 것인지 구상할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타투샵에서 일하며 겪었던 다양한 상황들이 떠올랐고, 오랜 고심 끝에 워크인 없이 100%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디자인 카피 문제였다. 워크인으로 오시는 많은 손님은 “오늘 타투나 받아볼까?” 하며 인터넷에서 찾은 그림을 가져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대부분 원본 그림을 그대로 타투로 새겨 달라고 하시는데, 사실 타투계에선 암묵적으로 흔한 경우지만 원작자의 허락 없이 카피를 하는 건 당연히 도의적인 예의가 아니다. 게다가 각 손님에게 특별한 타투를 새겨주고 싶었던 나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새롭게 커스텀 타투를 하려면 그 자리에서 급히 도안을 그려야 하는데 그 디자인 작업 시간을 워크인 손님이 앞에서 고스란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겨야만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손님들이 워크인으로 오셔서 그 자리에서 정한 타투를 받으실 때 나의 마음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중에 후회하시지 않을까? 너무 충동적으로 받으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현재 예약을 1년에 한 시간 동안 두 번 정도 여는데, 처음 문의를 주시고 예약금을 거신 후부터 보통 몇 달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정말 그 타투를 원하시는지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해 보실 수 있다. 손님이 심사숙고하신 만큼 만족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방법이고 장점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 이유는 안전이었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경우 들어오는 사람을 가려 받을 수 없기에,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겪고 나니, 혼자 일하는 샵이라면 워크인을 받지 않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생각했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노숙자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다. 샵에 다른 남자 아티스트들이 있어도 약에 취한 노숙자나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 고생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자 혼자 일하는 샵이라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안정성을 고려해 예약 손님만 받으며, 준비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누구나 마음 편히 방문할 수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샵’을 만들고 싶었다. 강하고 거친 이미지보다는 작은, 섬세한 타투에 주력하며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타깃 손님층을 만들고자 했다. 주변 사람들도 위험할 수 있다고 염려했기에, 보다 안전한 샵 운영 방식이 중요했다. 곧 2020년 3월의 오픈이 목전에 있었다. 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감에 부푼 가슴을 안고 모든 게 무사히 끝마쳐지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