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
따지고 보면 마음먹는 게 힘들었지, 사실 샵 오픈은 평탄한 편이었다. 뭐 개업 전 공사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출이나 사소한 문제들은 이미 각오했던 부분이니 기꺼이 멘탈을 다잡으며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자잘한 시련을 맞이할 때마다 이것만 이겨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힘들다가도 기운이 났다. 크고 작은 고비들을 무사히 넘기고 마음먹은 대로 마침내 3월에 오픈! 이미 기다리고 계셨던 손님들의 예약을 순차적으로 잡고, 기분 좋게 나만의 샵에서 손님들을 받기 시작하던 그 첫 달, 3월. 그즈음 유행하고 있던 감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앞의 에피소드에서 "2020년 3월"을 강조한 이유가 있었다. 앞선 일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후에 이런 엄청난 재앙이 찾아옴을 미리 알았던 하늘의 작은 친절이었으니까. 하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던 코로나 팬데믹이 내가 샵을 개업한 바로 그 달에 터질 게 뭐란 말인가?! 정말 웃기지도 않게 샵을 계약하고 오픈한 바로 그 첫 달에 기약 없이 문을 닫게 된 기막힌 상황이 일어났다.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년 이상을 통으로 쉬며 버거운 월세만 꼬박꼬박 낼 줄 알았더라면 가게를 개업할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를 하지만 그 당시는 머리가 다 빠질 정도의 스트레스였다. 정말 남편의 정신적 지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뎌 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1년 후, 언제까지고 끝날 것 같지 않던 길고 긴 팬데믹이 어영부영 마무리되었다. 모두 어색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나의 바나나 샵을 다시 오픈한 후에도 시련은 날 비웃는 양 계속되었다. 샵 오픈 후 1년 반 이상을 통째로 코로나로 날려버리고, 2년 차에는 가게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손님을 받나 싶더니, 가게에 물이 끝없이 새서 비만 왔다 하면 온 가게가 물바다가 되어 비싼 컴퓨터와 타투 머신이 고장 나고, 물에 젖는 모든 물품이 망가져 버리는, 정말 누가 저주라도 하나 싶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오래된 건물을 계약할 때는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그 시기에 샵은 무려 6번의 대공사를 해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물이 대체 어디에서 새는 건지를 잡을 수가 없어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원래 가게를 갖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건지, 아니면 나만 이렇게 모든 일이 꼬이는 건지. 뭐 하나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의 타투샵을 차리는 이야기의 끝에 이렇게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고생 끝에 내 샵을 차렸다 → 모든 문제 없이 해피엔딩'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스스로에게 기록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고, 모든 일이 꼬여버린 것 같은 순간에는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배웠다. 마치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추위를 피하는 것처럼, 때로는 멈춰서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잠시 멈춘다고 해도 내가 내딛을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괜찮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잊지 않는 것. 계속 정신없이 달려온 이야기만 썼지만 이번 화는 잠시 멈춰 서야만 했던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중에 만약 또 힘든 일이 생길 때 이 시기를 기억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겨울이 언젠가 물러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다행히도 변함없이 찾아주시는 손님들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가 길었던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면서 물이 새지 않기를 바라던 절박한 순간들이 지나고,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샵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약했던 시간을 지나, 어느덧 5년째 타투샵 바나나는 운영되고 있다.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좋은 기회들도 찾아왔다. 꾸준히 지지해 준 손님들이 내 작업을 여러 곳에 추천해 주시면서 신문, 잡지 인터뷰와 라디오 방송 출연 등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는 기회도 얻었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업을 알게 되었고, 더 넓은 무대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특히, 캐나다와 뉴욕에 위치한 유명 샵들로부터 게스트 초청을 받아 다양한 지역의 손님들을 만나고,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내 샵 바나나로 초대해 교류할 수 있는 값진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기술을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샵을 오픈할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을 때는 그저 막연하게 여태까지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니 이제는 처음 샵을 열 때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대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마음먹은 것들을 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자라난 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이렇게 한 단계씩 성장하면서 조금씩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닥쳐도 그 시간들을 겪어낸 나 자신을 믿으면서 천천히. 뭔가 몰두하면 앞만 바라보는 외골수인 나를 항상 지지하고 믿어주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손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볼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글귀처럼, 나약한 마음이 들 때는 강인하게, 겁이 날 때에는 용감하게, 그리고 승리할 때는 겸손하게. 초심을 잃지 않으며.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 글을 마친다.